[단상]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 방법
나이가 들다보니 일상에서 벗어나서 가끔씩 깊은 곳으로 들어가고 싶다. 그냥 산속이나 외진 곳에 혼자가서 있으면 그런게 가능할까하고 생각해본 적도 있고 실제 가끔 그런 곳에 한두번 가보면 그렇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아직 아이도 학교를 다니고 있고, 가정도 있고 부모님도 계시니 가끔씩 주말에 한 두번 깊은 곳으로 가는 것은 몰라도 일상에서는 자주하기는 쉽지 않다. 아마 평생 그럴듯 싶다. 또 그런 곳에 들어가서 산다고해도 시간이 지나 익숙해 지면 내가 계속 깊은 곳에 있다고 느끼지 못할것 같기도 하다.
어떤 사람은 나의 이런 생각을 아직도 매일매일 일하면서 먹고살아야 하는 현실에서 배부른 소리라고 할 수도 있겠다. 또 그래봤자 별로 현실에서 달라지는게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40이 넘은 어느순간 그냥 쳇바퀴도는 일상이 답답해졌고 깊은 곳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멈출수가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금이라도 나만의 시간이 필요하고 그럴려면 쫓기면서 먹고 살아야하는 경제적현실에서 다소 벗어나야만 할것 같았고 그러기위해서 비교적 낭비없이 부단히 노력했다. 앞으로도 계속 만들어가야하는 숙제이기도 하다.
깊은 곳으로 들어간다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봤다. 이는 사회적으로 의미있는것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행위도 아니다. 오히려 자기에게만 충실하는 이기적 행동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반복적인 일상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도 아닌 것 같다. 그건 넓어지는 것에 가까운 것 같다. 그렇다고 어떤분야의 전문가가 되어 깊이가 생긴다는것은 뭔가 반쪽짜리 같은 느낌이 든다. 스스로 마음 속 깊은 곳으로 들어가야 하나 생각하면서 명상을 떠올린 적도 있고 시도도 해보고 있다. 잘 안된다.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동안의 직간접 경험을 한번 정리해보고 싶었다. 이글을 정리하고 나면 다음 단계로 가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내가 뭔가 깊은곳으로 들어갔다고 주관적으로 느꼈던 경우]
1. 강원도 정선의 가리왕산에서의 하룻밤
- 거의 15 년전 얘기인 것 같은데 당시만해도 가리왕산은 정말깊은 산속이었다. 우연히 달이 없었거나 흐린날이었는지 한밤 중에 산장을 조금 벗어나서 같이갔던 일행과 산책을 했는데 진짜 고요한 완벽한 칠흑이었다. 후렛쉬만 끄면 것짓말을 보태 1미터 앞에있는 동료가 안보였다. 한 시간을 조금넘게 걸었던 것 같은데 깊은 느낌이었다.
2.수영과 러닝을 하다가
- 오래 전 30대초반 잠시 수영과 러닝을 한 적이 있었는데 해보신분들은 아시겠지만 가끔 러너스하이 라는 순간이 온다. 수영도 마찬가지인데 숨도 안차고 몸에경직이 빠져서 그 순간에는 영원히 계속하라고 해도 계속할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때가 있다. 물론 무리하게 계속하면 어느 순간 다시 힘들어지고 부상도 올 수도 있다. 어쨌든 무아지경에 가까운 순간이 오는데 뭔가 육체와 정신이 저 깊은 곳에서 서로 융합되는 느낌이다. 하지만 이런 순간이 늘 있는 것은 아니다.
3. 등산을 하다가
- 직장다닐때 주말에 4 시간 정도의 짧은 등산을 가끔 혼자 하고는 했다. 주중에 있었던 복잡하게 얽혔던 마음속 고민거리가 생각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떠올라 쉽게 머리와 마음속으로 정리되는 경우가 있다. 뭔가 나도 모르게 깊은 곳에 들어가 이를 해결하고 나온 것 같다. 이 또한 정말 가끔씩 있는 경우이다.
[다른 사람을 보면서 그렇게 느낀경우]
1. 성당에서 기도하는 사람을 보았을 때
- 젊은시절 카톨릭재단에서 운영하는 기숙사에서 2년 정도 머문 적이 있었는데 지하에는 작은 채플이 있었다. 주중미사는 거의 없었고 기숙사에 거주하는 학생들이나 직장인들이 가끔 내려와 기도와 명상을 하는 공간이었다. 나는 종교가 없어 자주 가지는 않았는데 어느날 내려가서 한 시간 정도 앉아 있었던 적이 있다. 그때 채플안에는 고요한 가운데 나보다 먼저 온 두 명의 사람이 소리없이 기도를 하고 있었는데 두 사람은 깊은 곳에 들어가 있는 느낌이었다.
2. 경전을 공부하는 친구
- 직장에서 만났던 한 친구는 모태신앙을 가진 개신교 신자였는데 어느 순간 기독교에서 벗어나서 다양한 종교를 가진사람들과 교류하며 경전을 공부한다고 했다. 그 친구는 늘 항상 깊은곳에 있다고 느껴진다. 그는 보통사람처럼 스트레스도 받고 직장도 다닌다. 그래도 그는 그렇게 느껴진다.
3. 먹으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
- 우연히 페이스북을 통해 알게되어 팔로우하던 화가의 강연회에 간 적이 있다. 그는 먹으로 그림을 그리는데 그는 먹은 검지않고 무한히 깊다고 했다. 그리고 깊은 먹을 도구로 찾았기에 본인은 그리는 일만 남았다고 했다. 그는 비교적 다작을하는 화가이다. 많은 그의 그림들이 깊게 느껴진다.
4. 어떤친구
- 오랬동안 알고 지내는 친구가 있다. 그는 멘사클럽에도 등록된 천재이다. 그 친구와 얘기를 하다보면 가끔씩 번뜩번뜩 몇 단계를 넘어가는 생각을 하는 것을 보게된다. 평범한 나에게는 내가 갈수 없는 몇 단계를 한 순간에 깊이 들어갔다온 느낌이다. 그는 나같이 일상적인 안정에 집착하는 사람이 생각하기에는 불규칙하고 불안정한 일상을 사는 것 같다. 그래도 그는 깊은 곳에 들어갔다 온다. 그 순간을 나도 느껴보고 싶다.
- 2019.0526 종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