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마의 단상(stray thought)/정치적 올바름에 대하여

[정치] 포퓰리즘(populism) 시대의 도래

종마(宗唛) 2022. 5. 8. 07:30

필자는 가족적인 상황으로 2007년부터 2012년까지 아르헨티나(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자주 다녀왔으며, 2009년에는 몇 달 체류한 경험이 있다. 당시 아르헨티나를 여러 곳 여행도 해보고 관련 서적이나 방송도 찾아보았다. 지리적 위치, 부존자원(농토, 원자재 등), 자연환경 모든 것이 아름답고 넘쳐나는 나라인 아르헨티나이지만, 내가 아르헨티나를 머릿속에 떠올리면 첫 번째 떠오르는 단어는 '포퓰리즘'이다. 미국만큼 지리적으로 모든 것을 가진나라 아르헨티나는 미국과는 정반대로 심하게 말하면 포퓰리즘으로 망해가는 나라이다.

지난 몇 년간 우리나라도 부동산, 기초연금 및 최저임금 및 신규산업 인허가 등과 관련하여 포퓰리즘을 떠올리게 하는 정책을 많이 시도하였고, 이는 많은 찬반양론을 우리 사회에 불러일으켰다. 지금 무조건적으로 현 정부의 정책을 모두 부정적인 포퓰리즘으로 몰고 이야기를 전개하려는 것은 아니니 오해하지 마시길 바란다. 하지만 위에서 설명했듯이 정치학이라는 것에 문외한인 나는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어설프게 주워들은 그리고 아르헨티나라의 체류경험으로 포퓰리즘을 부정적으로 보고 시작했던 인식이 있었음은 미리 말씀드린다.

먼저 포퓰리즘에 대한 정의부터 해보고자 한다. 두산백과에 의하면 포퓰리즘의 어원은 대중 또는 민중을 뜻하는 라틴어 '포퓰리스(populis)'에서 유래하였으며 대중주의 또는 인민주의라고 한다. 좀 더 쉽게 현시대의 정치적인 입장으로 풀어쓰면 대중에게 호소하여 다수를 위한 정책을 수립하고 다수의 지지를 얻어내기 위하여 노력한다는 점, 다수의 지배를 강조하고 직접적인 정치 참여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포퓰리즘은 민주주의와 맥을 같이한다고 나온다. 이에 반하여 포퓰리즘에 대하여 대중의 인기만을 쫓는 대중영합주의로 보는 부정적 시각도 뚜렷이 존재하며, 노동자층의 지지를 얻어 대통령에 당선된 아르헨티나의 페론* 정권이 대표적인 부정적 사례로 뽑힌다.

* 'Don't cry for me Argentina'라는 노래로 유명한 에바페론은 페론 대통령의 부인으로 어려운 노동자계층을 어루만져주고 사랑한 아르헨티나의 성모마리아로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동시에 포퓰리즘으로 나라의 경제를 망가트린 주역으로 재평가받고 있으니 참 아이러니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현재 필자가 거주하고 있는 스웨덴에서 30대 초반의 아르헨티나 변호사 출신으로서 워킹할러데이로 온 친구를 몇 번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녀는 페로니즘이 지금의 최악의 아르헨티나로 만들었다는 부정적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법학과를 졸업하고 심지어 변호사 자격증까지고 가지고 있으면서도 워킹할러데이를 통해서라도 유럽으로의 이민의 첫 연결고리를 만들고자 하는 작금의 아르헨티나 상황이 답답해 보였다.


포퓰리즘의 원래 의미는 대중의 의견을 반영한다는 좋은 취지에서 시작했을지 몰라도 민주주의가 상당히 많이 자리 잡은 개발도상국이나 선진국에서 최근 포퓰리즘은 오히려 대중인기영합주의라는 부정적인 의미로 더 많이 쓰이고 있다. 하지만 아직 독재를 겪고 있는 제3세계나 저개발국에서는 포퓰리즘은 긍정적인 의미로 쓰이는 게 맞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선진국에 살고 있는 한국인의 입장에서 포퓰리즘의 문제점을 짚어봐야 할 것 같다. 선진국에서 정책으로 등장하는 대표적인 포퓰리즘은 크게 첫 번째로 선심성 복지와 두 번째 정책반영에 있어서 대중의 여론을 이용한다는 면에서 들 수 있다.

첫 번째 선심성 복지란 생존에 필수적인 것이 아닌 대중의 인기를 획득하기 위한 일종의 추가적 복지를 의미한다. 물론 어디까지가 선심성 복지인 가는 분명히 논쟁의 소지가 다분한 이슈이기는 하다. 이야기의 전개를 위해 일단 A라는 복지를 선심성 복지라고 조작적 정의를 해보자. 선심성 복지가 왜 무섭냐면 한번 시작한 복지를 줄일 수 있는 정치인이나 정권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어쩌다가 소신 있게 얘기하고 표방할 수 있으나 분명히 선거에서 부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기에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위에서 말한 아르헨티나의 경우 대표적인 선심성 복지의 국가이다. 아르헨티나는 페로니즘 이후 경제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어도 전 국민에서 식량쿠폰을 제공하는 등 여전히 경제상황으로 봐서는 유지할 수 없는 복지를 가져가고 있다. 이는 결국 국가부채의 증가를 가져와서 국부가 산업개발이나 투자에 사용되지 않고 부채를 갚았는데만 쓰이게 하는 악순환을 가져왔다. 또 하나의 사례로 기본소득을 들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몇 년간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정치인들이 상당히 많고, 기초연금 및 의무복무 군인 월급인상까지 다양한 정책이 여야를 막론하고 추진되고 있다. 어찌 보면 국가경제가 먹고살기에 충분한 선진국에서 기본소득은 필요한 복지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기본소득을 검토한 유럽에서는 특히 대표적인 북유럽 복지국가의 하나인 핀란드에서는 기본소득이 안정적인 삶의 기반을 제공하여 다음단계로 나아갈 역할을 할지 몇 년간의 파일럿 테스트를 했지만 결과적으로 비용만 지출되고 효과가 없어서 도입하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스위스의 경우 기본소득을 20여 년간 검토하고 있지만 여전히 도입을 주저하고 있다. 물론 이들 국가들은 꼭 기본소득은 아니더라도 이에 준하는 다양한 복지정책을 가지고 있기는 하다.

두 번째 정책 반영에 있어서 대중의 여론을 이용한다는 측면을 보면 개인적으로 필자는 한국판 우버와 유사한 '타다' 서비스의 도입 부결을 들고 싶다. 당시 오랜 기간의 수많은 논쟁을 거친 후 여론을 반영하여 도입하지 않기로 결정하였다고 결론을 내렸다. 물론 많은 비용을 주고 자격을 취득한 개인택시 기사나 혹은 택시회사에게는 억울한 면도 있을 것이고 부정적 영향이 적지 않을 것이다. 영국에서도 우버를 처음 도입할 때 택시기사들의 반발이 굉장히 강했고 파업도 오랜 기간 했다고 들었다. 하지만 일종의 운송서비스의 일환으로 택시에만 의존하고 있던 서비스에는 분명히 변화가 필요해 보인다. 당장은 반대가 있더라도 중장기적으로 보면 적정한 수준의 운송서비스 다양화 및 자유화는 오히려 기술 및 서비스에 발전을 통해 대중에게 더 도움이 된다고 필자는 판단하고 당시 많은 관련 전문가들이 '타다'의 도입을 긍정적으로 보았다고 들었다.

세 번째는 두 번째와 연계하여 많은 기업들에 있어서 공정기술이나 제품기술의 유출이나 공개는 기업의 생사를 가를 만큼 중요한 사안이다. 특히 반도체산업 같은 경우 국운을 다룰 만큼 중요한 영역이다. 물론 지난 몇 년간에도 기업들의 여러 가지 공정이나 제품생산에서 안전사고가 발생했다. 그 과정에 공정기술의 문제로 인해 질병에 걸리거나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보상대책과 유사사고의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은 매우 필요하다. 하지만 이를 몇몇 시민단체의 요구를 근거로 꼭 정부가 앞장서서 해당공정의 기술을 누구나 볼 수 있는 외부에 공개하는 방식을 추진했어야 할까 생각하는 판단이 든다. 결국 수많은 입법, 사법, 행정기관의 논쟁 끝에 상당 부분이 흐지부지 되었지만 그래도 왜 해당 관련 전문가들이 아닌 해외경쟁기업까지 볼 수 있는 수준의 대중공개를 하라고 했는지는 의아할 수밖에 없다. 중요한 판단에 포퓰리즘을 이용한다고 밖에 볼 수 없는 사안이었다. 물론 그렇게 되면 기업측면에서는 생사를 가를 만큼 중요하기에 더 사고방지에 신중을 가했을지는 몰라도 해당법이 통과했을 것을 상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최근에는 포퓰리즘과 유사성을 가진 팬덤정치라는 현상도 등장하고 있다. '팬덤(fandom) 정치'는 일종의 팬들이 아이돌 스타에게 팬들이 다소 맹목적인 사랑을 보내는 것처럼 특정 정치인이나 정당에게 유사한 방식의 맹목적인 지지를 보내는 현상을 말한다. 더구나 포퓰리즘은 최소한 사실에 근거한 현상을 기반으로 대중을 이용하는 것에 반에 팬덤정치는 대중이 해당 정치인이나 정당과 자발적으로 연계되어 심지어 진실이 아닌 가짜뉴스에 기반한 탈진실*에 많은 기반을 둔다는 점에서 특히 위험해 보인다.
* '탈진실(post truth)'은 객관적 사실보다는 개인이나 집단의 감정이나 신념에 기반하여 대중에게 호소하는 행위이고 가짜뉴스나 확증편향이 많이 이용되고 있다.

민주주의, 자율, 다양성은 분명히 중요하고 현대사회는 선진국으로 갈수록 그렇게 진화하고 있다. 한국은 불과 20~30십 년이라는 너무 짧은 시간에 서유럽과 견줄만한 선진국으로 도약한 나라이고 민주주의 또한 그렇게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현세대를 생각 보면 극단적인 독재국가와 민주주의를 한 세대에서 동시게 경험하고 있어서 아직 민주주의 발전을 심리적으로는 부족하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이미 명실상부한 OECD, UNCTAD 등에서 인정한 선진국이다. 그런 면에서 필자가 보기에는 이제 어느 선진국 하고 비교해도 충분할 만큼 민주주의가 진척되었다. 필자 개인적으로도 냉철히 포퓰리즘과 탈진실에 기반한 팬덤정치에 빠지지 않았다고 자신할 수 없다. 그래도 이제는 국가전체가 일종의 포퓰리즘에 빠지게 하는 위험한 수준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 포퓰리즘은 대부분 개인이 듣기에는 달콤하고 당장 이익이 있어 보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포퓰리즘이 일정 수준 이상 진척이 된 경우 돌이킬 수 없는 늪에 빠진 국가의 사례를 자주 볼 수 있다. 그렇기에 포퓰리즘의 위험성을 개인 스스로가 경각심을 가지고 지켜보며 판단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는 나에게 돌아오는 이익이 당장은 다소 줄더라도 우리가 살고 있는 국가의 지속가능 모델의 유지를 위해 포퓰리즘에 반대한다. 그것이 수십 년을 살아야 하는 개인이자 국민에게는 중장기적으로 더 큰 안정과 이익을 가져다줄 것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 2022.0506 종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