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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무언가를 잘하는 법 — 끌리는 순서와 시간을 쓰는 순서가 다를 때

오늘 아침에도 논문 대신 AI 도구부터 열었다. 설계를 도와주는 어드바이저를 스킬로 만드는 중인데, 만들다 보니 공부가 같이 된다. 그러다 의문이 하나 생겼다. 특별한 재능을 타고나지 않은 사람이 전문가처럼 결과물을 내는 경우가 분명히 있는데, 그 동력이 뭘까.내가 지금 붙잡고 있는 네 가지 일을 두 가지 기준으로 줄 세워 봤더니 답이 좀 이상한 모양으로 나왔다.끌리는 순서와 시간을 쓰는 순서가 다르다나에게 지금 걸려 있는 일은 네 개다. 박사 공부, AI 도구 공부, 가족 자산과 세무 관리, 종손으로서의 집안 관리.본능적으로 끌리는 순서는 AI → 박사 공부 → 세무 → 집안 관리다. 그런데 실제로 시간을 부어야 하는 순서는 박사 공부 → 세무 → 집안관리 → AI활용 이다. 두 줄이 정확히 어긋난다...

[고택일기 27] 어느 여름밤의 화채와 불한당 이야기

계절별로 고향집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면 여름밤이 뭔가 아련하기도하고 평온하기도 해서 그런지 제일 먼저 떠오른다. 시골이라서 여름에는 늘 모기와 나방 그리고 벌레들로 가득했지만 그래도 여름밤이 가슴속에 진득히 남아있다. 모기와 벌레를 쫓으러 피워 놓았던 모기향은 일종의 추억의 향기로 평생갈듯 하다. 지금도 가끔은 일부러 여름밤에 고향집에 가면 툇마루에 앉아 모기향을 피워보기도 한다. 여름밤에 기억이 나는 사진같은 장면은 안방대청마루에 모여서 수박화채와 찐옥수수를 먹는것과 노래처럼 들려오는 풀벌레소리이다. 냉장고라는게 제대로 없던 시절 마을에 있는 하나뿐인 가게에 가서 큰 얼음덩어리를 사오는 것은 늘 나의 몫이었다. 사온 얼음덩어리를 주로 아버지께서 혹은 작은아버지나 고모부들께서 휴가차 오셨을때는 그분들이 ..

[습작 수필] 시선의 자화상

시선의 자화상지하철에서 한 노인을 보았다. 맞은편에 앉은 여학생에게 그의 눈길이 잠시 머물렀다. 은근해서 오히려 또렷한 시선이었다. 못 본 척하려다 결국 보고 말았다. 그가 이내 멋쩍은 듯 고개를 숙여 스마트폰으로 눈을 옮기는 것까지.그 황급한 회피가 나를 찔렀다. 더럽다고 느끼기 전에, 낯익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나는 거기서 한 장의 자화상을 보았다. 보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저 눈이 먼저 가버리고, 곧 부끄러워져 다른 데로 도망치는 눈. 미워할 수가 없었다. 미워하면 나를 미워하는 일이 될 테니.고개를 들어 칸을 둘러보니, 시선은 그 한 사람만의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는 맞은편 사람의 낡은 운동화를 오래 들여다보았고, 누군가는 연인의 뒷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한 아이는 처음 보는 얼굴을 빤히, 부..

[단상] 토큰(token)과 웰다잉

AI사용량에서 자주 등장하는 토큰(token)과 웰다잉이라니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가 오늘 오전 나의 머릿속을 휘젓고 있다. 아침 식사를 하면서 유튜브를 켰다. 10분 안되는 짧은 영화 리뷰가 제일먼저 등장한다. 2015년경 개봉했던 '유어 시스터스 시스터'란 영화이다. AI가 모든 것을 휘젓고 있는 최근 나의 일상에 꼭 90년대로 되돌아 간 것 같은 아날로그적 감성을 불러 일으킨다.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80대 중반을 훌쩍 넘어가시지만 직장과 거주지란 핑계로 어머니와 지금까지 지근거리에서 같이 지낸 시간은 얼마되지 않는다. 어머니께서는 평상시처럼 최근 며칠간 있었던 일상을 나에게 얘기해 주시고 있으시다. 그러다 친구분들이 이제는 한 두분씩 아프시거나 세상을 떠났다는 얘기를 하시다가 우연치 않게..

[수필] 고택일기: 도깨비 이야기

고택일기2(부제: 도깨비이야기)수년 전 도깨비라는 미니시리즈 드라마가 꽤 인기를 끌었다. 드라마 주인공으로 나오는 도깨비는 우리가 어릴적 듣고 동화책에서 보던 도깨비하고는 다른 모습과 이야기였다.나의 진외갓댁(할머니의 친정) 아저씨중 한 분은 국어선생님이자 시인이셨다. 조병화 시인이 아끼는 제자이자 후배라고 들었다. 시인으로도 활동하셨지만 향토문화 연구도 하신분이었다. 특히 도깨비에 관한 정보 및 이야기를 오랜기간 다루셨다고 들었다. 매년 설날에 세배를 오시면 가끔씩 흥미로운 도깨비 얘기를 해주셨다. 아래글은 이미 수년전에 돌아가신 그분께 중학교 시절쯤에 들었던 단편적인 기억을 되살려서 쓰는 이야기이다.도깨비 불나의 고향집은 강릉시에서 수킬로 떨어진 곳인데 지금이야 도로가 놓이고 많이 좋아졌지만 내가 어..

[전달, 단상] 생산론 - 회사 후배가 쓴 글

아래 글은 회사 후배가 쓴 글이다. 최근에 지인이 쓴 글 중에 가장 와 닿아서 내 공간을 통해 공유 한다--------[단상] 생산론 - 화재 후배가 쓴 글사람은 생산을 할때 살아있다는 것을 느낀다. 궁극의, 최상의 생산은 자식이다. 그다음으로는 내손으로 일구어낸 유무형의 무엇이다. 생산을 하지않는 삶은 권태에 질식되어 죽고 만다. 금수저 건물주로 매월 넉넉한 월세로 밥걱정 없이 오전에 골프연습, 정오에 사우나, 오후에 건물순회로 일상을 보낸다면 그 인생이 어떠할까? 센과치히로의 모험에서 엄마빠가 변해버린 딱 그 수준의 돼지의 모습일 것이다. 인간은 생산을 해야한다. 제손으로 동식물을 일구든, 가구를 만들든, 글을 쓰든,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해야 한다.수많은 고용된 노동자들이 재미없다 한다. 나역시도 ..

[단상] 평등에 대하여

한때 '사회계약론'을 맹목적으로 신봉한 적이 있었습니다. '사회계약론'으로 유명한 장자크 루소는 그보다 앞서 저술한 '인간불평등 기원론' 에서 사유재산이 인간불평등의 시초가 되었다고 프랑스의회에서 발언하였습니다.공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지만 대단한 사상가가 된 장자크 루소는 프랑스 대혁명의 사상적 근거를 제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참 이상하게 저도 한때는 이런 서적을 즐겨읽고 평등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최근에는 맹목적 평등주의를 추진하여 오히려 사회 전체적인 경제적 발전을 저해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아이러니 하기도 합니다. 가끔은 내가 가진게 젊었을때 보다 많아져서 욕심이 나를 지배하고 있나 생각해보기도 합니다.개인적으로 이제 겨우 29살에 불과한 '임명묵' 청년작가의 글에서 가끔 인사이트를 ..

[독서] 티벳 사자의 서

죽음에 대하여죽음이 두렵지 않은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나 또한 그렇다. 의식이 없어져서 자각을 못한다는 것도 그렇고, 사랑하는 가족들을 못돌보거나 못보는 것도 그렇고, 죽는 과정이 고통스러울 수도 있고 등등 여러가지가 있겠으나 가장 두려운 것은 삶면서 전혀 경험하지 못한 극단적인 상황 즉 의식이 없어진다는 것과 있을지 없을지 못한 사후세계에 대한 무지가 아닐까 한다. 사실 잠이드는 순간에도 의식이 없어지는 듯한 비슷한 경험을 하지만 다음날 깨어날거라는 확신이 있기에 잠드는 것은 다음날 회력된 체력으로 오히려 또렷한 의식을 가질 수가 있기에 잠드는 과정은 심지어 달콤할 수도 있다.살면서 죽음에 가깝게 나이드신 어른들, 단계를 넘어선 종교인들, 죽을만큼 고통스러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직간접적으로 접하..

[습작 수필] 액땜

오래전 지갑을 잃어버린 날이었다. 지하철 출구를 나서며 주머니를 더듬는 순간, 그 텅 빈 감촉. 카드 정지, 신분증 재발급, 반나절을 허비한 뒤 집에 돌아오니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저런... 그냥 액땜해서 잘됐다고 생각해."잘됐다니. 나는 그 말에 잠시 걸렸다.액땜이란 묘한 개념이다. 작은 불운을 큰 불운의 예방주사로 읽어내는 이 해석의 기술. 잃어버림을 잃어버림으로 끝내지 않고, 거기에 의미의 옷을 입혀 오히려 안도의 숨을 내쉬게 만든다. 지갑 하나 잃고 더 큰 무언가를 면했다는 논리는, 따지고 보면 근거가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오래도록 이 이야기를 믿어왔다.그것은 어쩌면 불확실성과 공존하는 법을 찾아낸 지혜일지도 모른다. 통제할 수 없는 세계 앞에서, 인간은 서사를 발명한다. 일어난 일을 '왜'가..

[단상] AI와 후각, 그리고 조향사

인공지능 관련한 책을 읽다가 얼마전 프랑스의 향수마을인 그라스(GRASSE)에 있는 프라고나르(FRAGONARD) 라는 향수 공장을 방문한기억이 떠올랐다. 그 당시 도슨트이자 마케터인 담당자의 인상깊었던 멘트들을 적어놓았던 휴대폰 노트를 찾아보니 다음과 같은 기록들이 있다.짧은 영어로 듣다보니 정확하지는 않아도 전세계는 약 3천개의 향수 에센스(한가지 원료에서 추출하고 정제한 원액. 참고로 향수는 이런 원액 몇가지와 80% 전후의 에틸알콜과 10% 전후의 물이 섞여서 만들어진다고 한다)가 있고 50명 밖에없는 향수마스터(조향사)도 약 300개 미만의 에센스를 감별해 낼수 있다고 한다. 마스터가 되려면 최소 10년의 수련을거치고 나서야 겨우 마스터 수련생이 된다고 하니 그 이후 얼마나 더 오랜 훈련이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