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소개] 나의 영국친구(닐 픽커링)
나는 비교적 소심하고 사교적이지 못해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맺은 인연이 그다지 넓지 않다. 그래도 몇 사람은 그 만남이 짧더라도 큰 느낌으로 다가오는 사람들이 있었고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기록으로 남기자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
그는 이제 70대 후반이다. 친구라고 하기에는 오히려 아버지 연배에 가깝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딱 서른 살 가을이었다. 영국유학시절 머물던 가톨릭 성직자 자치단체의 하나인 오푸스데이에서 운영하던 기숙사에서였다. 네더홀하우스라고 부르는 남학생들만 입주가 가능한 기숙사였는데 학생들도 학부에서 박사과정까지 연배가 다양했고, 학생이 아니더라도 직업을 가진 독신의 오푸스데이 가톨릭교도들도 기숙사에서 같이 생활하는 곳이었다. 당시 그는 스페인과 영국에 중심을 두고 전 세계에 여러 교육기관 및 기숙사를 운영하는 네더홀교육기관의 총재였고 나이는 50대 후반이었다.
* 오푸스데이
'잠시 오푸스데이에 대해 설명을 하면 가톨릭은 장로교, 침례교 등 독립적인 교파가 있는 개신교와는 달리 독립적인 교파를 인정하지 않고 단지 비슷한 지역기반이나 수행방법에 따라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수도회 정도의 차이만 인정하고 있었는데 1900년도 초반 스페인의 에스크리바라는 신부주도로 운영하던 오푸스데이 수도회는 신에 접근하는 방식이나 교인들이 생활하는 방식에도 파격적인 변화를 주고 있어서 가톨릭내부에서는 이단으로 분류하고 있었다. 당시 오푸스데이는 독재정치가인 프랑코를 지지하고 있어서 프랑코에 의하여 처음 스페인에서 정식수도회로 인정을 받게 된다. 그다음 오랜 기간의 논쟁을 거쳐 바티칸에 있는 가톨릭본부에서도 최초로 성직자 자치단체로 인정을 받아 현재 가톨릭은 다수파인 제수이트(예수회)와 오푸스데이라는 두 개의 자치단체(교파)를 가지고 있다고 봐야 한다. 다빈치코드라는 영화나 소설에 나오는 암살자가 오푸스데이 소속인데 역시 아직 가톨릭에서는 오푸스데이에 대해 어떤 느낌을 가지고 있는지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어째는 그는 높은 지위와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에서 온 기숙사의 여러 학생들과 친근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가끔 그 많은 학생들의 개인 이름 및 배경에 대해 기억을 유지하고 있는 것을 보면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당시 그는 이미 동남아를 비롯한 여러 나라에 오푸스데이의 교육 및 기숙사 형태의 수도원 확장, 펀딩 및 지원에 활발히 활동하고 있었다. 기업인들 및 해당 국가의 최고 정치, 종교 지도자들하고도 교류가 활발한 편이었다. 해당 기숙사에서는 월 1회 음악회와 런던에 머무는 다양한 가톨릭교도들이 모이는 행사가 있었는데 기숙사에 머무는 비가톨릭 학생들도 행사에 참여해서 어울릴 수 있었다. 그때 그를 몇 번 만나서 이야기도 나누고 몆 번은 조깅도 함께했던 기억이 있다. 옆에서 그를 보면 나는 가톨릭신자가 아니었음에도 그는 수행의 깊이가 추기경 정도가 아닐까 하는 느낌을 받았고, 가끔은 그로 인해 나도 가톨릭을 믿어볼까 하는 생각을 진지하게 해보기도 했다. 지금 아마 나에게 종교를 가지라고 하면 가톨릭을 선택하지 않을까 한다.
그러다 몇 번 이메일이 오가곤 했으나 연락이 오랜 기간 끊어졌었는데 2014년 경인가 그가 서울에 방문하는 기회가 있어서 당시 서울에 있던 기숙사출신 선후배들이 모여서 그와 함께 식사하는 자리를 갖게 되었다. 그 이후로 1년에 한두 번 이메일로 소식을 주고받다가 2016년 여름 영국으로 여름휴가를 가는 와중에 그와 연락이 되어 만나게 되었다. 바쁜와중에도 그는 반나절을 완전히 빼고 거의 6시간 동안 우리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마지막에 내가 머물렀던 기숙사까지 동행 후 만남을 마쳤다. 한참 사춘기로 방황하던 아이에게 큰 도움이 되었던 시간이기도 하였다. 우리 가족과 거의 3시간을 런던의 '햄스테드 히스'라는 큰 공원을 같이 걸었는데 걷는 중간에 우리 아이에게 그가 던진 질문이 기억난다. 그때 아이에게 인생에서 뭐가 제일 중요한지 물었고 아이는 거의 기계적으로 공부라고 대답을 하였고 그는 본인에게는 관계(인연)라고 대답을 하였고 그러면서 너희 아버지와 나의 거의 20년 전 인연이 오늘 우리의 만남을 가져왔다고 하였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데 그 순간 우리 가족은 조금 가슴이 뭉클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이제 직위를 내려놓고 남은 인생은 싱가포르에 머물면서 동남아와 아프리카를 대상으로 가톨릭의 수도원 확대와 봉사활동에 매진한다고 했다. 그가 싱가포르로 옮기고 몇 달 되지 않은 2017년 여름 심장에 스텐트를 6개나 심어야 하는 수술을 받았고 지금은 기적적으로 회복되어 다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고 얼마 전 소식을 들었다.
- 2019.1013 종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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