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말 당시 김일병은 22세의 나이었고 춘천의 한 미군부대에서 카투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김일병은 지방(대구) 출신에다 숫기도 없어서 입대 전 대학 때도 디스코텍도 거의 안 가본 숙맥이었다. 하루는 같은 부대에서 민간인 군무원으로 일하던 30대 아저씨가 부르더니 김일병 너는 서울에서 명문대 경영학과를 다녔으니 JJ마호니스 가봤지 하면서 자기가 지난주에 가서 토요일 밤에 놀았던 경험담을 얘기했다. 그야말로 20대 초반의 군인에게는 거의 마약 같은 자극이었다. 김일병은 숙맥이긴 했으나 명문대생답게 똑똑했고 영어도 수준급이었다. 그리고 겉으로 보이기에는 여자들에게 인기가 상당이 있어 보였다. JJ마호니스라고는 들어보지도 못한 김일병은 자기는 고시 준비에 전념하느라 공부만 했다는 핑계를 대었다.
당시 그 부대는 군인보다 직급이 높은 군무원이 많은 부대였는데 한 한국인 군무원은 직급이 높은 젊은 미국인 군무원과 한 조가 되어서 주말마다 각종 호텔나이트나 재즈바에서 부킹을 하는 것을 낙으로 삼고 있었다. 그 부대에는 여러 명의 카투사가 근무하고 있었는데 절반 정도는 서울에서 그야말로 도시문명에 익숙해지고 다 여자친구가 있던 교회오빠였고 나머지 반은 지방 출신의 촌스러워 보이는 총각들이었다. 지방 출신이면서도 세련된 이미지를 가지고 있던 김일병이 특이한 케이스였다. 김일병은 사실 공부보다는 학생운동에 열심히였던 운동권 학생이었다. 그의 눈에는 미국인과 함께 젊은 한국 여성들을 부킹 하러 다니는 그 군무원은 거의 매국노처럼 보였다. 학생운동으로 투옥될 위기마저 있었던 김일병이 카투사를 지원해서 근무하다니... 그 속을 알 수는 없지만 어떻게 보면 이율배반적인 아이러니다.
세월이 흘러 제대를 한 김일병은 학교 졸업 후 시골의 부모님을 생각하여 더 이상 학생운동은 하지 않고 공부에 집중하였다. 영어실력 덕분에 국내 최고의 무역회사인 우대상사에 취직을 하였다. 국내 최고의 회사답게 인재들이 많았는데 어느 날 부서 선배가 JJ마호니스에 밤에 놀러 간다는 얘기를 들었다. 갑자기 군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김일병은 선배에게 자기도 데려가 달라고 하였다. 그날 밤 김일병이 가본 JJ마호니는 그야말로 영화에나 나올 법 한 장소였다. 외국인도 많고 간혹 연예인들도 보였다. 여자들은 하나같이 외국물을 먹은 것 같기도 하고 매력적이었다. 그날 이후로 김일병은 월급을 JJ마호니스에 가져다 바치는 죽돌이가 되었다. 바텐더가 심지어 가끔씩 공짜 칵테일을 제공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다른 친구들이나 동료들과는 달리 김일병은 소위 여자들과 잘 부킹이 안되었다. 겉보기와는 달리 촌스러움이 있던 그의 매너 탓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밤 JJ마호니에서 놀고 있었는데 매력적인 여인이 그에게 다가와 한잔 하자고 했다. 의외로 얘기가 잘 통했다. 목소리가 약간 톤이 낮은 것 외에는 정말 매력적인 여자였다. 댄스 음악에서 조용한 음악으로 바뀌자 그 여인은 춤을 추자고 했다. 자연스럽게 둘은 몸을 밀착하게 되었다. 김일병은 여자경험이 많지 않은 턱에 푹 빠져버렸다. 시간이 지나 둘은 밖으로 나가서 근처 카페에서 한잔 더 하게 되었다. 누가 뭐랄 것도 없이 시간이 지나 둘은 모텔에 들어가게 되었다. 김일병이 먼저 샤워를 하고 기다렸다. 조금 있다 여인이 샤워 후 가운을 입고 나왔는데 김일병은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서로 키스를 하면서 더듬고 있는데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여인은 사실 성전환 중인 남자였다. 완전한 여자도 아닌 남자도 아닌 상태였다. 깜짝 놀란 김일병은 즉시 옷을 입고 모텔을 나와 집으로 향하는 택시를 탔다. 내성적이었던 김일병은 이 얘기를 하지는 못하고 그냥 동료들에게는 맥주 한잔하고 다음에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고 했다.
시간이 흘러 김일병은 결혼도 하고 아이도 둘이나 생겼다. JJ마호니에 간지도 오래되었다. 집사람과의 부부관계는 별로 재미가 없었다. 둘째가 태어난 이후로는 거의 각방을 쓰는 처지였다. 가끔 아내가 부부관계를 원했으나 김일병은 여러핑계를 대고 피하곤 했다. 부인은 김일병을 원망스러워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일요일 오후 김일병은 아이와 소파에서 잠이 들었다. 문득 악몽과 함께 잠이 깨었는데 느낌이 이상했다. 김일병은 주변동료들이 스님의 옷을 입고 절의 수행방에서 명상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이상했다. 안 고자던 아이는 옆에 있던 동자승이었고, 부인은 음식을 해주던 젊은 보살이었다. 매력적으로 보여 원나잇을 하려고 했던 그 여인은 절의 총무스님이었다. 군무원 두 사람은 절에 템플스테이를 하고 있던 한국인과 외국인 친구 관광객들이었다. 사실 김일병은 자다가 일어난 절에서 키우던 강아지였다. 거울을 통해 본인의 모습을 보지 못한 김일병은 본인이 늘 옆에서 보이는 스님의 모습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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