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친구는 대학동기이다. 요즘은 서로 바쁜나머지 1년에 한두 번 만나는데 각자의 생활 환경이 다르다 보니 만나면 할 얘기가 많다. 그 중 한 친구는 오디오와 자전거 조립에 푹 빠졌다고 했다. 이제는 자기가 직접 세팅한 자전거들을 원가보다 꽤 높은 가격에 받고 판다고도 한다. 취미생활도 하면서 돈도 벌다니 부럽기만 하다. 한 친구는 프리랜서를 한지 오래되었는데 뭔가 일상의 고단함이 느껴진다. 예전에는 가장 부유한 귀공자 같았는데 세상이 변하다보니 친구의 이미지도 다소 변했나 보다. 나머지 한 명은 원래 늘 평범하다. 뭔가 오늘따라 더 평범하고 밋밋해 보인다. 그래도 세 친구는 30년이란 시간의 끈을 이어가고 있다.
술잔을 기울이다 거의 20년전 선배 어머니의 장례식장을 가던 길에서 지나치듯이 본듯한 흰색 옷의 여인에 대한 얘기가 우연히 다시 화제가 되었다. 오디오를 만지는 친구는 원래 귀신이나 혼백을 잘 보고는 했는데 사실 흰색 옷의 여인도 이 친구가 아니었으면 다른 두 친구는 아마 접하지 못했을 수도 있는 얘기이다.
여기서 잠깐 오디오 친구의 경험 하나를 먼저 얘기해 보고자 한다. 대학 졸업 후 그 친구는 혼자 신림동에서 자취를 하고 직장에 다니고 있었는데 마침 여동생도 취직이 되어 같이 살게되었다. 그래도 여동생이라고 자기가 쓰던 큰 방은 동생을 주고 겨우 침대와 옷걸이가 들어가던 옷방으로 쓰던 작은 방을 자기가 쓰기로 했다. 이상하게 그날부터 오디오 친구는 자꾸 악몽이나 가위에 눌리면서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일주일이 지난 일요일 동생과 아침을 먹다가 동생이 푸석푸석한 오빠의 모습을 보고는 워낙 큰 체격의 오빠가 방을 바꾸고 잠을 못잔다고 생각했는지 오빠한테 자기는 큰 방이 휑하다고 작은방에서 자보고 싶다고 했다. 동생 역시 작은 방에 자고 부터는 비슷한 악몽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그 다음주 일요일 다시 둘이서 아침을 먹다가 동시에 얼굴을 보면서 '꼬마'하고 외치게 되었다. 둘다 그 방에서 밤마다 자면서 꼬마를 본 것이다. 오빠는 주로 밤마다 침대끝에서 앉아서 자기를 바라보는 파란 얼굴의 8살 정도의 아이를 동생은 같은 느낌의 아이를 주로 벽에 붙어서 자기를 바라보는 꿈을 꾼 것이다.
다시 흰색 옷의 여인? 이야기로 되돌아 가면, 세 친구는 초가을로 접어들던 어느날 대천이 고향이던 다른 대학동기의 어머니 부고를 접하고는 셋 중 평범했던 친구의 차로 서울에서 대천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평일이라 근무 시간이 끝나자마자 출발했지만 큰 도로에서 대천가는 길로 접어드니 이미 사방이 캄캄해졌다. 셋은 대천이 처음 인지라 이정표만 보고 운전하면 가는 중이었는데 병원이 대천 해수욕장 근처라 가까이 가면 바다가 보이거나 뭔가 가는 길에 있을 것 같았는데 이상하게 가는 길은 깨끗이 포장된 도로에 그냥 산골마을인것 같았다.
아무리 달려도 심지어 집이나 가로 등도 거의 없었다. 이미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 대천이 나오지 않아서 운전하던 친구는 밤이라 위험한데도 더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그래도 계속 칠흑같은 시골 마을만 계속 되었는데 갑자기 길 옆쪽에서 하얀 옷을 입은 사람 같은 것이 보였다. 운전하는 친구는 도저히 주변 환경으로 볼 때 사람이 있을만 한 상황이 아니라서 무언가에 빛이 반사된 것으로 생각하고 계속 차를 달렸다.
그러자 옆자리에 앉은 오디오 친구가 여자를 길가에서 봤고 태워 달라는 손짓 같았다고 차를 멈추는게 어떠냐고 했다. 셋은 수백 미터가 지나고 나서 차를 세우고 나서 한참동안 서로 맞다 아니다 실랑이를 벌이다가 시골길에서 조난 사고일 수도 있으니 한 번 돌아가서 확인하기로 했다. 불과 1~2백미터 전이었는데 천천히 속도를 늦춰서 가는데 흰색 옷의 여인이 있을만 한 곳이 보이질 않았다.
거꾸로 수 킬로미터를 되돌아 갔는데 갈때는 보이지 않던 대형 주유소가 눈에 띄었다. 길도 물을겸 기름도 넣을겸 내려서 이 동네에 마을이 있는지와 여인을 보았다는 얘기를 주유소 직원과 얘기를 나누다가 여기는 원래 신작로 공사를 하다 중지가 되어 길 끝쪽에는 그냥 돌들이 방치되어 있어 밤에 빠른 속도로 더 달렸으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실제 공사 마지막 부분에서 몇 번 사고가 있었다는 것이다. 주유소는 신작로 정보를 접하고 미리 저렴하게 대지를 구입해서 지었으나 공사중지로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영업을 중지하려고 하는 순간이었는데 운좋게 거의 마지막 손님이 세 친구였던 것이다. 그리고 주유소 직원은 지나친 곳은 절대 사람이 들어올만한 곳이 아니고 길도 끊겼으니 되돌려서 가라고 했다. 되돌려서 가다보니 대천 이정표가 보였고 20분도 안되어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밤 9시면 도착할 줄 알았던 시간이 밤 10시반을 넘어가고 있었다. 상주였던 친구를 위로 하면서 세 친구는 돌아가신 친구의 어머니께서 나타나셔서 자칫 사고로 이어질뻔 한 아들의 친구를 돕지 않으셨을까 하고 상상의 나래를 피면서 얘기를 나누었다.
- 종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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