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엘리베이터에서 그녀를 보았다. 긴 생머리와 하얀 피부에 또렷한 이목구비, 선해보이는 미소... 거의 10년만에 다시 설레임이란 감정이 솟아올랐다. 벌써 기주가 회사를 다닌지도 10년차인데 그녀가 새로 입사한 신입사원도 아닌데 왜 이제서야 눈에 띄었을지 모를일이다. 혹시 경력사원으로 새로 입사했을까? 뛰는 심장 못지않게 머리가 회전하기 시작했다. 어느 부서일까? 결혼은 했을까? 나이는 몇 살일까? 사내 동아리는 무엇일까?
그날 부터 그녀는 기주의 눈앞에 수시로 등장했다. 구내식당에서, 업무회의에서, 회식자리에서 다른 부서와 조인트가 되면서 한두 마디 어깨너머 목소리를 들을 기회도 있었다. 그러나 좀처럼 개인적인 대화의 기회를 만들기가 쉽지 않았다. 어느날 기주는 친한 입사동기가 그녀와 얘기를 나누고 있는 것을 보았다. 둘은 무척 친해보였다. 다소 내성적인 기주는 며칠을 속으로 끙끙앓다가 동기에게 부탁을 했다(동기는 기혼자이다). 그녀를 우연히 보았는데 속내를 털어놓으며 그녀에 대해 여러가지를 물어보았다. 다행히 그녀는 미혼이었다. 동기는 그녀가 입사한지도 5년이 넘었는데 왜 기주가 그녀를 몰랐는지 의아해하는 눈치였다. 다들 매력적인 그녀가 왜 아직 미혼인지 모르겠다고 한다. 그렇다고 직접 그녀에게 대쉬하는 남자들도 별로 없었다고 한다.
동기에게 우연인 것 처럼 자연스러운 점심식사 자리를 한번 만들어 달라고 했다. 마치 3인 예약자리에 갑자기 펑크가 난 것 처럼하고 기주를 대타의 형태로 식사자리에 불러냈다. 그녀와 처음 식사하면서 개인적인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처음보는 사이인데도 무척 편하게 기주의 말을 받아주었다. 그녀와 몆 번 데이트 아닌 데이트를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더 이상 진도가 나가지가 않는다. 기주가 내성적이긴한데 여자들과 대화는 잘 하는 편인데 이상하게 그녀와의 관계는 그냥 멤돌기만 한다. 그러다 갑자기 바쁜 프로젝트가 기주에게 맡겨졌다 서너달을 매일 야근에 주변사람들과 여유있게 얘기할 시간도 못내고 흘러갔다. 가끔씩 그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주말에 그녀가 산다고 들었던 동네로 자전거를 타고 지나갔다. 우연히 마주친것 처럼 만나면 뭔가가 될 것 같은 기대감을 가지고...
그러다 기주는 맡은 프로젝트를 가지고 해외근무를 나가게 되었다. 또 몇년이 흘렀다. 몇번 출장차 국내에 들어왔지만 그녀를 개인적으로 볼 시간은 갖지못했다. 그녀가 결혼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5년만에 본사로 복귀했다. 그녀는 아직 회사에 다닌다고 한다. 결혼 했지만 아이는 없다고 들었다. 먼발치에서 그녀를 보았다. 그녀와 다시 만나고 싶었다. 이제는 대화를 나누면 뭔가가 통할 것 같았다. 하지만 만나면 어떡할 것인가 그녀는 이미 결혼했는데... 그녀에게 업무상 물어볼 것이 있다고 하고 식사나 한번 하자고 했다. 그녀는 남편얘기를 거의 하지 않았다. 그녀는 여전히 매력적이었다. 왜 갑자기 '화무십일홍'이란 단어가 머릿속에 떠올랐는지는 모르겠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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