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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오래된 지혜, 전문가, 집단지성 그리고 인공지능

종마(宗唛) 2021. 4. 19. 16:54

오래된 지혜

필자의 어릴 적에는 전해오는 속담, 역사속의 유명인들이 남긴말 및 어른들의 조언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겼다. 물론 사춘기 시절이나 젊었을적 한때는 잠시 선배들의 생각이나 조언이 이제 구시대의 유물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새로이 세상에 등장하는 기기의 사용법이 아닌 개인적 사회적인 어떤 판단을 할때는 점점 더 부모님이나 선배들의 조언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그들에게는 단순 상황적인 시비에 대한 판단뿐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서 해당 결정이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 지에 대한 경험이 들어간 판단이기 때문이다. 실례로 집안 일을 판단할때 비교적 사리분별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동생에게 많이 의논하는데 듣기에 딱 적합해 보인다. 동시에 어머니께 조언을 들으면 뭔가 굳이 저렇게 해야하나 오히려 이게 나중에 더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드는데 이상하게도 어머니께서 하신 조언을 들으면 당시에는 몰라도 시간이 지날 수록 그게 옳은 결정이었다고 느낄 때가 많다.

청소년기에는 선생님이나 부모님의 추천도서가 대부분 고전이었다. 당시는 일반 전문가나 지식인들의 저술이 지금처럼 다양하지 않던 시기이기도 하지만 지식인들이 컨텐츠 생성이라는 작업을 많이 하지 않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때는 사실 고전에서 얘기하는 지식들이 그냥 글에 불과하고 별로 와 닿지가 않았는데 갈수록 고전에 숨어있는 지혜에 감탄이 들고는 한다. 우리가 읽는 고전은 길게는 수천년 짦게도 1백년을 넘게 살아남은 문명의 지식이다. 중간에 사장된 지식들도 무수할 것이다. 물론 고전이 이전에 없는 신기술을 알려줄 수는 없을지 모른다. 그래도 최소한 그 기술이 사회에 가져올 영향과 기술을 대하는 태도는 여전히 유효하게 느껴진다.


전문가

개인적으로 분쟁이나 복잡한 문제를 싫어하는 필자의 성격상 가능하면 법적인 이슈가 생길만 한 상황은 피하는 편이다. 그럼에도 살다보면 어쩔 수 없이 계약서를 작성하거나 법과 관련되어 분쟁이 생기고는 한다. 한 번은 사적인 업무로 계약을 한 적이 있는데, 상대방측에서 상황적 이슈가 있어서 일이 진행이 안되는 일이 있었다. 차라리 문의에 대한 변화가 필요하거나 불만이 있다면 회신이라도 있어야 조정이라도 가능한데 전혀 소통도 안되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계약이라는 것이 있어서 그냥 파기하는 것도 문제가 있을 것 같았다. 어쨌는 계약서에 준하여 일 처리를 해야한다고 생각되어. 지인 변호사에게 문의를 구했다.

내용증명이라는 것을 난생 처음 보내보는데 지인이라고 비용을 받지 않고 무료로 해주는데 조금 부담감을 느껴서 계속 문의하기가 어려워 그가 보내준 초안을 내 맘대로 변경하고 디테일을 수정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가 보낸 초안이 간단해 보이지만 법적인 분쟁상황에서는 최적의 내용이었다. 내가 수정한 디테일이 오히려 문제를 일으킬 소지를 양산할 수 있었다. 또 다른 변호사 선배와 통화를 하여 얻은 조언도 비슷한 방향이었다. 내가 회사생활을 하고 일해온 방식과는 분명히 조금 달랐다. 괜히 전문가가 있는게 아니다.


집단지성

소셜미디어가 활성화 되면서 집단지성이 폭발하고 있다. 특히 새로운 정보를 접하거나 지식을 구할때는 작게는 10명 내외의 단톡방에서 얻는 조언도 큰 도움이 된다. 물론 숫자가 많을수록 더 디테일하고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그래서 한때는 집단지성이 '오래된 지혜'나 '전문가'를 대체하지 않을까 생각한 적이 많다. 왜냐면 집단지성 내에는 소위 전문가도 들어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특정 이슈를 깊숙히 해결하거나 완결할 때는 단순히 제공받는 집단지성에는 한계가 있을 때가 많고, 우리나라만 그런지 외국도 그런지 모르지만 정치적 사회적 이슈가 집단지성에서 논의 될때는 이상하게 편향되게 나타나는 경우도 많다. 집단전체가 그런식으로 반응을 할때는 두려움도 느낀다. 분명히 나도 그러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집단지성은 우리에게 분명히 다양한 시각을 제공해주고, 새로운 정보를 빠르게 습득하고 해결 할 수 있는 지식의 창구임에 분명하다. 특히 비대면의 시대에 접어들며 개인간의 관계가 예전처럼 깊숙해지기 힘들때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집단지성에 의존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인공지능

사살 이 친구는 여전히 잘 모르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 어떻게 보면 위의 모든 것을 대처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하기도 할 것 같기도 하다. 예전에 의존하던 백과사전, 전문가, 심지어 집단지성 조차도 나는 그 조언을 주거나 지혜를 주는 대상에 대한 판단이 서지만 인공지능은 도대체 모르겠다. 대상에 대한 판단이 선다는 것은 사실 그 조언을 주는 대상에 대한 축적된 정보의 프로세스를 나만의 방식으로 검증하는 것과 비슷하다. 즉 그 결과가 다소 잘못되어도 조언에 대한 가치를 인정하는 편이며 감사하게 느낀다. 그리고 최종판단은 내가 한다는 면에서 자기주도권이 있다. 하지만인공지능에 의존하면 주객이 전도될까봐 두렵다.

앞으로 인공지능이 얼마나 더 우리의 삶속을 파고들지 모르겠다. 하지만 최소한 당분간은 그 중간단계에서 인공지능도 과거의 지식이나 지혜의 채널이 가지고 있는 신뢰성 등을 답보하기 위한 과정을 거칠 것 같다. 예를 들면 A라는 인공지능에 대한 신뢰성, 정보의 풍부성 혹은 브랜드 가치 들을 사람들은 판단하게 되고 거기에 따라 인공지능의 조언이나 지식을 판단하지 않을까 한다. 그 이후에 세계는 모르고 좀 두렵기도 하다.

'사람들이 제일 위험하게 생각하는 것은 나쁜게 아니라 모르는 것이다.'

- 종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