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후배가 사직서를 냈다. 아이들도 어린데 뜻밖이었다. 이 후배는 3년 전에 한 4개월정도 같은 부서에 있다가 헤어졌는데 그 다음 해에 집으로 가는 지하철에서 우연히 만났다. 그 이후로 가끔 식사도하고 업무적으로도 사적으로 도와주는 관계가 되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잘 통한다고 느꼈다. 얼마 전 오랜기간 암으로 투병하시던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후배의 아버지는 16여년을 암과 다투시면서도 같은 임종에 가까운 사람들을 위해 의미있는 활동을 많이 하셨다고 들었다. 아버지는 젋은 나이에 임원이 되셨다고 하셨고 병도 이른 나이에 걸리셨다고 한다. 무엇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쳤는지는 몰라도 아버지의 삶의 궤적이 후배에게는 이번 퇴사에 적지않은 영향을 미친듯 하다.
몇년 전 모시던 어떤 임원은 참으로 열심히 일하시고 능력도 뛰어나신 분이었다. 그 분 책상에 인상적이었던 것은 부임하고 몇달 후부터 책상에 사직서를 붙여놓고 일을 하시는 것이었다. 아마 사직을 할 각오로 최선을 다한다는 의미였을 것 같다. 사직서를 처음 본 순간은 저렇게까지 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공간을 들여다본 수많은 사람이 그것을 보았을 것 같다. 내가 옆에서 본 그 분은 매일 아침 6시에서 거의 밤 12시까지 일하는 것 처럼 보였다. 직접보지 않은 사람은 믿지 못할 것이다. 그 분은 여전히 직장에서 승승장구하고 계시다. 난 아직도 사직서를 책상에 붙여놓을 만큼 용기가 나지 않는다.
나도 회사를 여러번 이직했다. 매번 사직서를 내는 순간은 쉽지 않았다. 첫번째 사직서는 대학원 공부를 위해, 두번째 사직서는 집안상황으로 좀더 시간적으로 여유있는 직장을 찾아서, 세번째는 승진의 모멘텀을 놓쳐서 새로운 직장에서 커리어의 교두보를 만들고자, 네번째 사직서는 집안일로 우울증을 겪던시기라서 더이상 일을 할 수 없던 상태라서였다. 몇 달을 쉰 후 지금 직장에서는 매년 한 직장 최장근무라는 신기록을 갱신하며 10년 가까이 일하고 있다. 이번에도 사직서를 쓰고싶은 상황과 욕망은 꾸준히 나를 괴롭힌다. 지금은 새로운 일을 하기위한 준비도 어느정도 했지만 더 이상 사직할 용기를 잃어버렸다.
개인적으로 두 번이상의 이직은 권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끝이 있어야 새로운 시작이 있다.
- 2018.7 월 어느날. 종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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