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주는 아침일찍 일어나 출근길에 화장하는 아내를 보고 있다. 프리랜서 작가인 기주는 늘 아내보다 늦게 출근하는 탓에 아내의 출근 준비를 바라보는 편이다. 오늘따라 거울앞에서 화장하는 그녀가 매력적이다. 하지만 그 느낌이 더 낯설다. 그 화장은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위한 느낌이다.
기주와 아내는 대학교 1학년때 만났고, 오랜기간을 연애한 후 30대 중반이 넘어서야 결혼을 하였다. 20대 후반이 지나가면서 주변에서는 왜 결혼을 하지 않냐는 따가운 눈초리와 기주에게 많은 비판의 말들이 있었다. 너는 남자니까 몰라도 네 여자친구는 이렇게 오래기간 사귀고 결혼을 하지 않으면 흠이된다고 하였다.
기주는 아내와 사귀던 시절에 늘 마음 한켠에 왠지모를 불안감이 있었다. 기주의 아내는 예나 지금이나 늘 기주에게 충실한 편이고 관계형성에도 적극적이었다. 데이트를 할 때도 늘 아내가 기주를 리드하는 편이었으며 결혼도 아내가 먼저 기주에게 얘기를 꺼냈었다. 하지만 기주의 잠재의식 저편에서 밀려오는 무언가가 기주의 결혼 결정을 막고 있었다.
벌써 결혼한지 10년이 훌쩍 넘고 아이는 초등학교 고학년이 된 오늘 아침도 기주는 불안감을 가지고 시작했다. 그 불안감은 20여년이 넘는 기간 마음속 저편에서 기주의 모든 것에 발목을 잡고 있었다. 기주는 학창시절 촉망받는 국문학과 학생이었다. 학창시절부터 무수한 단편 소설을 창작하였다. 그리고 몇번 문예잡지에 기고도 하고 실리기도 했다. 교수님과 선후배들은 기주가 유명한 작가가 되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기주는 한 번도 수상을 못하였다. 국내의 문학계에서 등단하고 본격적으로 인정받으려면 수상은 필수사항 이었다.
주변 사람들은 왜 아무도 기주가 수상을 못하는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모두 작가의 수상을 결정하는 한국문인협회를 비판했다. 그들은 황당하게도 유전자를 매우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삼았다. 일종의 작가의 집안에서 작가가 나온다는 입장을 견지했고, 신인상 평가 기준에는 포함되어 있지는 않지만 8촌이내의 친인척중에 작가가 한 명이라도 없는 신예작가는 내부적으로 컷아웃 하는 불문률이 있었다. 즉, 단기적으로는 우수한 글을 쓸 수 있어도 장기적으로는 유전자가 더 우수한 작가로 성장한다는 일종의 오래된 고정관념이 깨지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어느 순간 기주는 작가의 길을 포기하고 광고회사의 카피라이터로 직장을 생활을 시작했다. 직장 초년병 시절에는 기주의 카피라이팅이 대박을 쳤다. 다들 회사에 천재가 입사했다고 추켜세웠다. 그러나 3년차가 지나는 어느순간 기주의 카피는 더 이상 각광받지 못했다. 그러다 기주는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과장 진급을 앞두고 사표를 썼다. 그래도 인간관계가 좋았던 기주에게 다니던 회사에서 B급 회사의 카피라이팅을 외주로 맡겼다. 그러저럭 그일도 5년이 지나자 그나마도 있던 기주의 일감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기주의 아내에 대한 잠재의식 속의 불안감은 복학 후 시작되었다. 군시절 면회도 자주왔고, 복학하자 마자 다시 둘의 관계는 예전과 같이 잘 지내고 있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기주는 아내의 시선이 기주를 바라보고 미소짓고 있음에도 늘 먼곳에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니 기주외에 누군가를 마음속에 담고 있는 느낌이었다. 하루는 아내몰래 뒤에서 미행하기도 했지만 아내는 늘 기주에게 충실하기만 했다. 기주는 글은 조금씩 무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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