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의 풍경은 이국적 유럽인데 갑자기 어릴 적 고향마을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살고 있는 스톡홀름 아파트는 130년 정도 된 작은 건물에 있는 아파트인데 내부만 고쳐서 산다. 거리의 대부분 건물들이 그렇다. 그러다 보니 이른 새벽이나 밤늦게 가게들이 문을 닫고 사람들이 집으로 들어가고 아무도 없는 거리는 그냥 수십 년 전의 이곳과 크게 다를 게 없을 것 같다. 뉴욕이나 서울 같은 현대식 대도시 하고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밤이나 새벽에는 매우 조용하고 한적한 느낌이다. 그래서 오늘새벽잠이 깨서 갑자기 고요한 느낌에 창밖을 보다 시간이 뒤로 흘러간 느낌이 들었나 보다.
어린 시절 방학 때면 늘 강릉의 본가에서 지냈다. 할아버지께서는 초등학교 5학년 겨울에 돌아가셨는데 이미 수년간 병상에 계셨기에 나한테는 할머니하고의 기억이 더 많다.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 우리 집은 춘천에서 당시는 명주 군이던 강릉 인근의 고향본가로 이사 왔다. 강릉도심에서 십리 정도 떨어진 시골이다 보니 밤이면 밝아야 띄엄띄엄 있던 집들의 어두운 백열등 불빛과 함께 고요함만 가득했다. 가로등도 거의 없던 시절이었다. 형광등이 있었던 집들은 많지 않았고 인근 친척이나 친구집에 가면 모든 방에 전등이 있지는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그때는 많은 친인척들이 근처에 같이 사셨고 제사가 많았던 기억이 난다. 자주 저녁때면 제사에 참석하러 인근의 친척집으로 갔고 색이 바랜 창호지, 황토벽 때로는 일부 신문지로 벽을 바른 방에서 백열등을 켜고 제사를 지내고 모여서 식사를 했다. 돌이켜보면 참 주변에 빛이나 소리 소음이 없고 고요한 시절이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수도권에 살면서 늘 빛과 소리의 소음에 묻혀 살았다. 언제부터인가 가끔씩 고향에 오면 그 한적함이 좋았다. 일과 이슈는 많지만 시간이 다르게 가는 느낌이다. 이제 고향마을도 신작로가 들어선 지 오래되어 차량 통행도 빈번하고 거의 마을과 왕래가 없이 거주하는 도심형 이방인들도 많아졌다. 이미 거의 10년 전이었지만 그들은 벤츠를 몰고 선글라스와 반려견을 안고 다녔다. 뭔가 고요했던 한적함은 사라지고 있다.
하루 날 잡고 밤하늘을 봐야겠다. 그러면 어린 시절 고향에서 보던 은하수가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겨울이 시작되어 오후 3시 반이 넘어가면 사진의 하늘과 같으니 구름이 없는 날이면 생각보다 많은 별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 2019.1114 종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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