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마의 단상(stray thought)/종마의 단상

[단상] 서빙의 순서

종마(宗唛) 2024. 10. 21. 06:25

우연히 들어온 작지만 세련되고 가성비도 나쁘지 않은 이탈리안 식당에서 단정한 40대 웨이터가 서빙을 한다. 작은 4인용 테이블이지만 안쪽에 앉은 아이, 집사람, 그리고 내 순서로 음식을 가져다준다. 해외 거래선 및 다양한 사람들과 식사경험이 많은 집사람이 아이에게 얘기를 해준다. 외국의 fine restaurant에 들어오면 서빙하는 순서대로 음식을 그냥 두라고 괜스레 윗사람이나 어른들 위한다고 음식이 담긴 접시를 옮기지 말고... 웨이터들도 그들만의 서빙하는 순서가 있으니 그냥 두면 된다고 했다.

문득 오래전 캐나다 밴쿠버로 짧은 여행을 갔을 때 당시는 그냥 우스갯소리로 들었던 소리가 떠올랐다. 캐나다에서는 성인남자가 가장 사회적 후순위라고 아이, 노약자, 성인여자, 강아지, 그리고 성인남자 그중에서도 유색인종 성인남자라고 얘기했다. 심지어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보다도 뒤였다 ㅎㅎ. 이는 병원, 지하철 내 죄석배치, 관공서의 서빙순서 및 연금을 포함한 모든 것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결국은 사회적 약자를 먼저 배려하는 사회구조의 결과이다.

우리나라 식당에 가면 흔히 벌어지는 일이 있다. 사람들이 식당에서 뜨거운 뚝배기도 윗사람(모임의 높은 사람이나 연장자) 먼저 드린다고 하다가 종업원이 본인에게 먼저 놓은 것을 옮기다가 간혹 엎거나 흘리는  실수들, 그리고 윗사람이나 손님에게 먼저 드리라고 종업원에게 손짓하여 그들의 동선을 복잡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 간혹 직장에서는 나만이 느끼는 오해인지는 몰라도 말로는 아니라도 해도 본인에게 음식을 먼저 서빙하지 않거나 부하직원이 이를 먼저 챙기지 않으면 안 좋은 내색을 하는 상사나 거래선이 있다.

언제인가 선배가 나에게 과제에 실패한 사람은 다시 기회가 있어도 의전에 실패한 사람은 기회가 없다고 얘기해 준 적이 있다. 실제 그렇게 느끼는 경우가 많다. 가끔은 정말 이유 없이 업무적 비판을 과도하게 받는다. 나는 젊은 시절에 직접 임원에게 일만 잘한다고 직장생활이 잘 되는 것 갔냐?라는 피드백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런데 나도 아직 식사할 때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을 보면 오래된 고정관념과 습관은 무섭다. 말은 이렇게 해도 나도 그런 문화에 젖어있는 꼰대인가 보다.

식당에 와서 유독 종업원들에게 여러 가지를 시키는 사람이 있다. 만 원짜리 이하 짜리 비빔밥 먹으러 와서도 여러 가지를 시킨다. 물론 식당에 따라 고객이 필요한 것들을 배치해놓지 않은 곳도 많다. 그러다 보니 고객입장에서는 내가 고객이니 필요한 것을 요청할 수도 있다. 그래도 내가 세운원칙은 그날 인당 식단가의 만원 기준으로 최대 한번 정도가 추가적으로 종업원에게 시키는 게 최대치이다. 즉 객단가가 2만 원이면 최대 2번 정도가 적합할 것 같다. 그 이상이면 갑질로 변질될 가능성이 크다. 전에 어떤 사람은 서비스가 안 좋은 식당은 이렇게 해서라도 피드백을 주어야 한다고 했지만 난 공감이 안되었다.

요즘은 특히 우리나라처럼 여러 음식들을 시켜놓고 나누어 먹는 분위기에서는 호스트나 리더가 먼저 음식을 나누어주는 모습은 세련되어 보인다. 연장자나 상사가 먼저 서비스를 해주니 전체 분위기가 좋아지는 경우를 자주 접한다. 식당에서 접대 시 정말 필요하면  종업원에게 미리 서빙의 순서를 얘기해 두는 것도 좋을 것 같다.

- 2019.0930 종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