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쯤 이었다. 여름휴가로 영국 여행계획을 짜고있었다. 비행기 티켓값을 줄여보려고 주로 저비용 항공사가 취항중인 gatewick공항으로 티켓을 구매했다. 그리고 런던 시내 보다 저렴한 호텔을 시 외곽에서 찾다보니 공항에서 도심까지 동선상에 윔블던 지역이 눈에 들어왔다. 지도에서 zoom-out하면서 보다 세계 3대 테니스 대회의 하나인 윔블던 경기장 이름이 보이면서 20년전 옛 생각이 생생히 머릿속으로 흘러갔다.
20년전 대학원 2년차때 하루 오후 윔블던 경기를 관람했던 기억은 아직도 깊은 느낌으로 남아있다. 사실 나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시카고 대학에서 교환학생으로 와있던 프랭크라는 미국인 친구가 마침 과제를 같이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윔블던 경기를 보러가자고 제안하였다. 별로 스스로 활동적이지 않았던 나에게는 흥미로운 제안이라 서로 관람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이미 대회가 진행중이라 시즌티켓은 판매가 종료되었고 코트2나 센터코트에서 하는 4강 이후의 경기는 리셀러 시장에서 경기당 백만원이 훌쩍 넘어간 상태였다. 그러다 발견한 방법이 리턴티켓을 구매해서 들어가는 것이었다. 즉 티켓부스 앞에서 오랜시간 줄을서서 기다리다 당일티켓을 구매한 관람객중 경기를 그만보고 나가면서 반납한 티켓을 티켓부스에서 저렴한 가격에 구매해서 들어가는 방식이다. 쾌적한 관람을 위해 입장객수를 통제하기에 이 방법이 큰돈을 들이지 않고 입장할 유일한 방법이었다.
아침일찍 윔블던 경기장 근처로 가보니, 이미 줄의 앞쪽은 전날 경기가 끝난 후 밤10시부터 미니텐트까지 치고 기다리는 사람이 많았다. 운이 나쁘면 몇시간 줄만서다 돌아가야할 상황이었다. 우리는 아침 9시가 살짝넘어서 부터 줄에서 기다리기 시작했는데 약 4시간을 기다린후 1시가 살짝넘어 입장할 수 있었다. 당시 우리돈으로 2만원 정도인 12파운드에 리턴티켓을 구매했는데 리턴티켓 중에서도 가장 저렴한 소위 그라운드 코트만 관람할 수 있는 티켔이었다. 좋은 코트에서는 주로 세계랭킹이 높은 선수들이 경기를 했는데 그 티켓은 가격이 훨씬 비쌌던 것으로 기억한다.
입장하는 순간 TV에서만 보던 웜블던에 눈에 들어오니 가슴이 살짝 두근 거렸다. 서너 경기 정도를 돌아가면서 그라운드 코트에서 보았다. 그라운드 코트의 특성상 코트에 바짝 붙어서 볼 수 있었는데 바로 앞에서 보는 세계적인 선수들의 경기는 감동 이상이었다. 당시 세계 4위 정도였던 테드터너라는 미국선수의 경기가 특히 재밌었는데 마침 옆자리에 굉장히 예쁜 동유럽출신 느낌의 여성이 있었다. 미국인 친구는 어디서 왔냐 혼자왔냐는 등 저녁에 약속이 없으면 옆에있는 내가 런던 지역전문가니 같이 펍에 다니면서 놀자고 수작도 부렸다. 그랬더니 자기는 파트너가 있다며 뒷쪽을 가르키는데 동유럽 부호나 마피아처럼 보이는 사람이 보디가드들도 동반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미국인 친구는 그들을 보더니 잘못하면 암살당겠다고 하며 슬쩍 다른코트로 옮기자고 했다. 사실 별일은 없었다^^ 저녁 거의 7~8시경 마지막 그라운드 경기가 마치고 우리는 경기장을 떠났다. 나오면서도 정말 신나게 보낸 하루로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기숙사로 돌아와서 며칠뒤 테니스를 좋아하시던 아버지가 생각났다. 테니스를 좋아하셔서 강원도 교사 테니스 대회에서는 우승도 몇번 하셨던 기억이 난다. 아버지를 모시고 시즌경기를 꼭 보러오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한국에 돌아오고 새로운 직장에 결혼 출산까지 2년이 훌쩍지나고 있던차에 2년뒤로 다가온 아버지 칠순기념으로 모시고 가려고 일정이며 시즌티켓 구매방법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하필이면 그때 중국 상해로 장기간 프로젝트 매니저로 파견을 가게되었다. 기간중에 이슈가 많았는데 컨설팅 프로젝트로 매일 야근으로 피곤했던 나는 욕실에서 핑하며 미끄러지다가 넘어져서 쇠골뼈에 살짝금이 갔다. 집에 얘기도 안하고 있다가 돌아갈때쯤이면 괜찮겠지하고 있었는데, 갓 돌지난 아이가 폐렴에 걸려 입원하게되서 집사람이 걱정스러워하며 연락을 해왔다. 다행히 그후 프로젝트 기간동안 회사의 배려로 매 2주마다 2박3일 일정으로 한국에 다녀갔다. 소아병원에 입원해서 울고있는 아이를 보니 안스럽기도 했다. 나의 팔을 본 가족들은 오히려 나를 걱정하였다. 입원중인 아이와 걱정스런 눈빛의 가족을 뒤로하고 나는 다시 상해로 돌아왔다.
상해로 돌아와 일주일쯤 지난 시점에 아버지에게서 암이 발견됐다는 전화를 받았다. 강릉에서 4기 진단을 받으셨는데 서울 종합병원에가서 다시 진단을 받고 싶어 귀국해서 아버지를 모시고 아산병원에 겨우 약속을 잡고 방문을 하였다. 부위도 그렇고 이미 수술은 하기 어려워서 방사선치료를 먼저하고 화학치료를 진행하기로 했다.
나는 다시 중국으로 돌아왔다. 몇차례 방사선 치료를 하셨는데 주치의가 믿을 수 없는 얘기를 하였다. 치료가 잘 되서서 암이 거의 없어진것 같다고 좀 쉬었다가 봄에 다시 치료하자고 온 가족은 얼싸앉고 기뻐했다. 얼마안지나 기침이 심해지시고 복수가 차올라서 급한김에 최초로 진단을 받은 강릉아산병원에 다시 입원하셨다. 입원하시고 복수를 빼신후 괜찮아 보이셨다. 서울병원에서는 계속 크게 나빠지지 않았다고 했다. 계속 복수가 차서 다시검사한 강릉주치의는 폐로 전이가 많이 되었고 한달정도를 얘기했다. 마지막 1주일쯤 나는 휴가를 내고 아버지 병상을 지켰다. 평상시 아버지와 살가운 대화가 많지 않았던 아버지와 나는 조용히 있을때도 많았다. 상태가 괜찮으셨던 어느날 아버지께 말씀드렸다. 이번에 회복되시면 칠순여행으로 윔블던 경기를 보러가자고... 아버지께서는 좋아하셨다. 그리고 며칠뒤 갑작스럽게 상태가 안좋아지시며 칠순을 일년 앞두고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이번 여행일정중 2일이 윔블던 일정과 겹쳤다. 아이한테 좀 힘들더라도 윔블던 경기를 보는게 어떠냐고 물어봤다. 아이는 확실하지 않은 리턴경기티켓을 기다리기보다는 다른 것들을 하고 싶다고 하였다. 하긴 나에게도 짧은일정중 거의 하루를 확실하지 않은 이벤트에 줄만 몆시간 서는 것은 맞지않아 보인다. 그래도 20년전 몇시간 줄을 서지 않았으면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회상이 없었으면 별로 기억에 남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이 글을 보면 아이의 마음이 바뀔까?
- 2019.0626 종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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