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나라나 그나라 사람들을 한 두가지 키워드로 정의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도 우리나라의 '빨리빨리' 처럼 나라와 국민의 특성을 표현하는 키워드 들이 있다. 아이러니 하게도 빨리빨리는 한때 부정적인 의미가 많았다. 쉬지못하고 노예처럼 일한다는 의미와 대충대충 물건을 만든다는 의미도 있었다. 그래서 만드는 물건이나 일처리가 말끔하지 못한다는 의미로 외국 사람들에게 사용되었다. 메이드인 코리아보다는 한때 메이드인 독일, 일본 등의 표시가 품질이 우수한 것으로 여겨졌다. 지금의 한국의 '빨리빨리'는 다소 중립적으로 바뀌었다. 여전히 한국 사람들은 뭔가 빨리하지만 이제는 유연성있고 일처리도 완성높게 하는 것으로 뉘앙스가 바뀌고 있다. 물론 경쟁강도가 강하고 일을 너무 짧은 시간에 많이 해야하는 부정적인 의미도 여전히 내포되어 있다.
스웨덴에 살면서 이 나라 사람들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를 생각해 봤다. 처음에는 안전, 나눔, 친절, 지루함, 나태함, 고독, 독립성, 신뢰 등 다양한 단어가 떠올랐으나 지금 정리해보니 '자율'이라는 단어가 가장 적합할 것 같다. 스웨덴에서 '자율'이란 여러가지 의미로 다가오는 동시에 눈에 안보이는 매우 강력한 문화적 특성이다. 이는 직장생활, 교육, 육아, 건강관리, 공중질서, 환경관리, 범죄방지 등 모든 영역에서 작용하고 있다.
막상 '자율'이라는 단어를 꺼내들었고, 어렴풋이 의미를 알고 있었지만 마침 읽고 있던 책에서 그런 내용이 나와 네이버에서 찾아보니 비슷하게 정의 되어 있어서 아래에 정리해 본다.
철학자 칸트가 주로 이에 대해 정의 했으며 그 의미는 '자신의 욕망과 타인의 명령에 의존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객관적인 도덕 법칙을 세워 이를 따르는 것' 이라고 나와있다. 특히 자신의 이기적?욕망에도 메몰되지 않고 객관적 도덕 법칙을 세운다는 의미는 뭔가 더 구체적이고 새롭게 다가왔다.
최근 수년간에 걸쳐서 한국사람들의 자율성도 빛이나고 있다. 일정한 틀 안에서의 자율준수는 이제 우리나라 사람도 스웨덴은 물론 세계 어느나라하고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것으로 사료된다. 하지만 스웨덴 사회에서의 자율의 의미는 좀더 장기적이고 포괄적이며 개방적이다. 분명히 자율에 있어서는 한국보다는 한 수 위로 판단이 된다.
직장에서의 자율
스웨덴은 직장인들에게 연간 약 4주의 긴 휴가를 보장하고 있다. 그리고 주어진 휴가 4주는 대부분 여러가지 형태로 소진하고 있다. 특히 처음 여기와서 이해가 안갔던 점은 한국인의 관점에서 보면 업무가 밀려있어도 컨디션이 안좋다는 핑계로 바로 휴가를 내고 집으로 가거나 갑자기 출근을 안하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회사에 오지않고 재택근무를 한다고 해도 된다. 실제 그 직원이 일을 하는지 안하는지는 아무도 확인할 수도 없고, 확인하지도 않는다. 자율에 맡기는 것이다.
가끔은 낮시간에 골프장에서 그리고 피트니스 센터에서 만나는 직장인들처럼 보이는 스웨덴 사람들을 보면 이들이 진짜 휴가를 내고 왔을까 아니면 재택근무를 한다고 하고나서 운동을 하러 왔을까 하는 의심이 들기는 한다. 처음에는 우리와는 다른 업무 환경에 어떻게 업무를 처리하고 목표를 완수할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이런 나태함이 과거대비 상대적으로 경제동력이 약해진 이유가 아닐까도 생각했다.
분명히 우리나라 하고 비교하면 전체적인 사회의 발전속도나 경제동력이 약한 것은 맞다. 그럼에도 개인적인, 기업적인 차원에서 보면 특이하게도 1년이라는 과정을 돌이켜보면 이들은 거의 본인들에게 주어진 업무나 성과 목표를 달성해 낸다. 근태가 바로 능력으로 생각하는 한국사람들 대비하면 확실히 자율적이지만 목표달성은 많이 뒤쳐지지 않는다고 생각된다.
교육에서의 자율
스웨덴의 교육은 철저히 자율에 맞추어져 있다. 학생들은 정답을 빨리 맞추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답을 내는 방식의 교육에 중점되어 있고, 평가도 그렇게 한다. 철저히 성인이 되는 18세 이후의 자율적인 인간으로 독립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과제나 시험에서 에세이를 작성할때 보아도 정답을 명확히 적는 것 보다는 자율적인 본인의 생각이나 연구가 들어있는지가 좋은 점수를 받는데 중요하다.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나왔다. 그래도 특별히 이름이 언급되거나 강제하지 않고 자율적으로 집에 머무르고 처리하도록 안내하고 있다. 절대 강제로 나오지 말라는 얘기는 하지 않는다. 영어로는 늘 recommended로 표현된다.
코로나 상황에서의 자율
스웨덴은 집단면역을 천명하고 초기 감염속도가 빨라서 한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실제로 한국에 비하면 몇십배의 감염자가 나왔지만 스웨덴은 서유럽 같은 혼란이나 의료대란이 없었다. 증상이 약하면 병원에 오지말라는 권고를 자율적으로 잘 지킨다. 마트에서 물건 사재기 같은 경우도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초기에는 밀가루나 휴지가 부족해 질 수 있다는 소문이 퍼져서 마트에서 두가지 물건이 동나는 경우가 불과 며칠정도는 벌어졌지만 이도 며칠이내에 정상화 되었다.
식당의 영업금지, 개인의 마스크 착용 및 8인 이상 모임금지도 우리나라 처럼 절대 강제사항이 아니다. 이들은 단순히 정부가 권고(recommended)만 한다. 심지어 해외에 갔다가 돌아와도 격리도 자율에 맡긴다. 몸이 이상하거나 의심이 되는 스스로 격리하라고 권고할 뿐이다. 강제적인 것은 거의 없다. 사실 이 부분은 나도 공감이 안되는 면이 지금도 여전하지만 스웨덴 사회는 이렇게 돌아가고 있으며 이로인해 예상했던 혼란도 별로 없는 편이다.
아파트에서 파티의 자율
한국 아파트에서는 층간소음으로 크고 작은 문제들이 생긴다. 아마 아파트 가정집내에서 밤 10시까지 음악을 크게 틀고 파티를 한다면 불가능하지 않을까 한다. 스웨덴의 아파트는 우리나라와 조금 형태가 다르긴 해도 공동주거공간이라는 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이들은 미리 1층에 약 1주일 전부터 파티가 있다고 고지하고 양해를 구한다. 우리 옆집에서도 고등학교 졸업기념 파티가 있었다. 건물 1층에 공지한 것을 아이가 알려줬고 나도 보았다. 그렇게 이해가 되니 이런 것이 무조건 안되는 것 보다는 자율적으로 돌아간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리고 파티는 보통 밤 10시정도면 자율적으로 정리하고 마친다. 혹시 더 늦어지면 젊은이들이 가는 클럽으로 이동한다고 한다.
일반적인 줄 서기 같은 것은 너무 자율적인 사항이고 우리처럼 다소 일률적이지도 않고 노약자들이 있으면 줄을 서다가도 무조건 줄서기에 연연하지 않고 서로 양보하는 면도 많이 볼 수 있다. 스웨덴 사람들의 자율성을 얘기하다보니 일부 과장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분명히 우리나라 사람들도 생각해 보고 적용해 볼만한 부분이 충분히 있어 보인다.
- 종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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