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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생존본능

종마(宗唛) 2024. 10. 22. 04:33

'생존본능', 이 단어가 항상 마음속에 있기는 했으나 무엇에 내가 촉발되어 이 단어로 글을 쓰기 시작했는지는 모르겠다. 글을 쓰다가 중간에 길을 잃어서 한참 그냥 두었는데 엉뚱하게도 '기술의 충격(What Technology Wants)'이란 책을 읽다가 글을 마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았다.

2010년 보험사로 이직하여 10년 정도 마케팅과 신시장 개발업무를 담당했다. 보험사에 일하는 사람은 몰라도 일반인은 보험이란 영역이 여전히 어렵고, 불투명하며 뭔가 그런 느낌이 강하다. 특히 우리가 현실에서 주로 접하는 보험모집인(보험설계사)인 업무는 아무리 외국계 생명보험사들이 라이프플래너 등으로 이미지 쇄신을 해도 접근이나 직업으로 시작이 쉽지 않다. 아주 손쉬운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 계약이 몇 개 끝나고 나면 전혀 모르는 타인을 상대로 보험영업을 시작해야 하는데 대부분 여기서 오는 심리적 부담의 벽을 넘지 못하고 오래 버티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보험산업은 내가 경험한 여러 산업 중 가장 규제가 많고 동시에 투명하다. 규제가 많다는 것은 소비자 보호장치가 많다는 것이다. 단 정보의 비대칭 이슈가 크고 이로 인해 크고 작은 문제가 발생한다.

서설이 길었는데 보험모집인이란 직업이 심리적으로 쉽지 않은 직업이라 초기에 가장 역점을 두는 교육이 소위 보험 ship 즉 일종의 심리교육이다. 한마디로 심리적 압박감을 버티고 이를 넘어가는 교육이다. 나도 초기에 이런 교육을 조금 받았는데 시작하자마자 던지는 첫 번째 질문이 세다. 물에 나와 가족이 빠졌을 때 단 한 명만 살 수 있다면 누구를 제일 먼저 구할지 순서대로 써보라고 한다. 물론 남과 공유는 하지 않아도 되고 본인만 보면 된다. 일부 교육생은 교육시간에 발표라는 과정을 통해 자기가 고른 순서를 공유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사람이 자기를 먼저 쓰지 않는다. 보통 아이가 제일 많고 아니면 배우자, 본인 간혹 부모님을 쓰는 경우도 있다. 누가 볼까 봐 그랬는지, 대부분 연령이 40~50대가 많기에 본인은 어느 정도 살아서 그런지 아니면 사랑의 힘이 크던가, 유전자보존의 본능인지는 몰라도 자녀를 구하겠다고 한다. 쉽게 넘길 수도 있는 질문이지만 진짜인 것처럼 감정이입을 하면 쉽지 않은 질문이다.

항공기를 타면 꼭 하는 필수 교육이 있다. 사고 시 대응 교육인데 다들 들어봤겠지만 제일 먼저 본인이 살 수 있도록 산소마스크나 장비를 갖추고 자녀의 장비착용을 도우라고 한다. 위의 상황과는 생존의 순서가 다르다. 생존에 취약한 어린 자녀 보다 조금 더 버틸 수 있는 부모가 먼저 살준비를 하라니... 뭐가 맞는 것인가? 심리적 고민을 불러일으키는 부분이다. 비행기에서 비상상황이 벌어졌을 때 교육은 그렇게 받았지만 나도 모르게 아이한테 손이 먼저 가고 그러다가 들다 살수도 있지만 결국은 나도 중간에 숨이 막혀 아이도 나도 못 구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이게 비행기 탑승객 전체의 생존에도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초등학교 5학년 정도일 때 해수욕장에서 내가 겪은 일은 평생의 약간 트라우마가 되었다. 한 번은 동생 및 여러 또래들과 아주 살짝 깊은 곳으로 갔는데 순간 파도인지 무엇이 우리를 밀어내서 키를 넘어가는 곳으로 밀려갔다. 그때 물속에 빠져 들어가 호흡곤란을 겪었던 나는 옆에 있는 동생의 어깨를 누르며 물밖으로 나오려고 했다. 동생이라는 인식은 있었다. 내가 눌러서 동생이 어려운 상황에 처할 거라는 인식까지 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숨을 쉬기 위해 물밖으로 나오려고 했고 동생의 어깨를 본능적으로 눌렀다. 다행히 해변에서 멀지 않았고 어른들이 다가오셔서 금방 구해졌지만 분명히 조금만 시간이 지체되어도 위험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그때는 동생이 오빠가 나를 눌렀다고 했다. 시간이 얼마 지나고 가끔 동생한테 그 얘기를 하면 언제부터인지는 진짜 기억이 잘 안 난다고 한다. 지금 같은 상황에 처하면 내가 어떻게 행동을 할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 순간은 적어도 나에게는 합리적 이성보다는 이기적 생존본능이 다시 안 살아난다고 장담을 못하겠다. 나는 좀 더 생존본능에 이기적인 사람일까?

현실 속, 역사 속, 영화 속에서 우리는 자기희생으로 가족, 타인, 집단, 나라 혹은 자신이 믿는 신을 구하는 이야기를 종종 접한다. 사람이 생존위기의 극단적인 상황에 접하면 어떻게 행동을 할까? 평상시에 자기 수양, 정신적 훈련이나 그리고 학습을 하면 그 순간에 자기의 생존본능을 벗어나는 이타적 행동이 좀 더 가능해질까? 얼마 전 사바하란 영화에서 불멸의 능력을 가졌고 매우 이타적인 존재였던 신에 가까운 인물은 그 능력이 없어지고 불멸이 없어질 위기에 접하자 수십 명을 죽이고 본인의 생존의 가능성을 높이는 선택을 한다.

결국은 생존본능 그리고 성장이라는 방향으로 위기의 순간에는 행동한다. 위의 사례에서 자기 개인을 먼저 구하는 사람은 개인의 생존본능이 우선이고 생존의 1차 단위를 자기 개인으로 본능적으로 인식하는 사람이다. 자기보다 자녀와 같이 가족을 먼저 구하는 사람은 개인보다 가족을 생존의 단위로 여기고 그래서 가족을 생존의 기본단위로 인식하는 사람이다. 소속 집단이나 나라를 구하는 사람은 생존의 단위가 개인, 가족을 넘어 나라로 본다. 그리고 개인과 가족은 집단이나 나라를 구성하는 구성물뿐이다. 그래서 개인이나 가족보다 집단이나 나라의 생존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한다. 가족의 입장에서 보면 가족을 팽개치고 나라를 구하는 가족의 구성원이 공감이 될 수도 있고 안될 수도 있다. 우리는 개인, 가족보다 집단 나라를 구하는 사람을 소위 영웅으로 치하해 왔다. 인간이라는 것이 개인으로 생존하는 것보다 집단으로 생존하는 게 유리해서 그렇게 우리에게 그렇게 학습되어 본능적으로 인식되어 왔을 수도 있다. 누군가는 지식이 높고, 자기 수양도 높고, 나라에서 높은 위치에 있다고 해도 위기의 순간에 집단이나 나라를 위하지 않고 개인이나 가족을 우선시한다. 그런 사람이 위정자가 되면 집단이나 나라는 안 좋을 수도 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생존의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본능적으로 행동한다. 인식하는 생존의 단위가 다를 뿐이다.

- 2019.0827 종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