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성의 시간'
- 앞으로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
김치, 치즈, 젓갈, 홍어, 나또, 스르스트뢰밍(북유럽식 삭힌 청어), 심지어는 신선함이 중요한 회, 고기도 상당히 많은 인류가 오랜 기간 좋아하는 음식은 숙성의 시간이 필요했다.
음식만 그러한가 배움 및 생각에도 숙성의 시간이 필요하다. 생각하지 않고 넣기만 하는 지식의 위험함은 사회 곳곳에서 발견된다. 요즘 10~20대 자녀들을 둔 부모들이 그리고 교육정책가들이 만들어낸 돌이킬 수 없는 실수는 우리 아이들을 10대 초반부터 성인이 되는 순간까지 숙성의 시간을 빼앗고 입시의 수렁텅이에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나 또한 여전히 그러고 있다. 줄이려고 하는데 쉽지 않다. 부작용은 눈에 보이게 안 보이게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아이들이 배부르고 고생을 몰라서 그렇다고도 한다.
숙성을 하는 동안 여러 가지 변화가 있다. 숙성을 하게 되면 중간에 뭐가 많이 달라붙는다. 그러면서 처음 가졌던 인식과 지식의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 혹은 처음 가졌던 생각이 더욱 견고해지기도 한다. 많은 경우 숙성의 과정은 감성으로 시작한 느낌에 이성으로 시작한 지식에 반대의 성질을 추가하여 이성과 감성이 통합된 새로운 깨달음이라는 결과물을 가져다준다. 숙성을 통해 속도는 느려질 수 있으나 생각의 깊이와 견고함이 더해진다.
그러면 생각의 숙성은 왜 필요할까? 누군가 50년의 세월을 살았다고 치자. 그러면 50년간 쌓아온 지식, 느낌 그리고 경험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사람에 따라 10년을 살아도 누구에게는 50년 이상이 필요한 숙성의 내공이 축적된 사람도 있고 누구는 100년을 살아도 10년만 못한 사람도 있다. 어쨌든 무언가 외부적 input이 들어오는 것은 20대나 50대나 80대나 같을 것이다. 그 순간에는 그렇다. 특히 들어오는 정보에 대해 무지한 상태라면 훅치고 올라오는 감정도 그렇고 정보량도 그렇다. 그대로 반응하면 다를 게 없다. 하지만 이를 숙성의 과정에 넣는 동안 그동안 축적해 온 숙성의 내공이 반응하여 다른 결과물을 내는 것 같다. 물론 '장고 끝에 악수'란 말도 있지만 대부분 숙성이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앞으로도 이런 숙성의 시간이 필요로 할까? 결국은 숙성이 들어온 input이라는 감성적 이성적 정보를 제대로 처리하기 위한 시간 혹은 프로세스라면 AI시대에 성큼 들어선 지금 시대에는 그 역할을 컴퓨터에 넘겨야 할지도 모르겠다. 일례로 어떤 판단을 나도 가만히 앉아서 생각하는 시간보다는 검색을 통하여 먼저 이것을 해본 사람들의 경험을 찾는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때문이다.
상당수의 미래학자들이 AI로 인한 특이점이 도래할 시기가 멀지 않다고 얘기한다. 현재의 발전속도로 볼 때 2045년 정도로 예측을 하고 있다. 아마 그 전후로 우리에게는 숙성이라는 사고의 기술이 필요 없어질지도 모른다. 인류가 수천 년간 사용해 온 훌륭한 기술이 특이점으로 인해 희비가 갈리는 순간이 될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결국 AI시대도 우리가 열어가고 만들어가는 것이다. 특이점이 와서 설사 그 이전과 이후의 모든 관점이 바뀌어도, 심지어 인류의 피조물인 AI가 인류를 넘어서는 순간이 와도 그 진행 과정을 설계한 사람들은 경쟁력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혹은 어떤 식으로든 세상을 지배하는 위치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 최소한 변화의 과정인 20~30년 동안은 남에게 휘둘리는 삶을 적게살 가능성이 높다.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숙성의 시간이 다시 요구되는 순간이다.
- 2019.0905. 종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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