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마의 단상(stray thought)/종마의 단상

[단상]지덕체가 아니고 체덕지

종마(宗唛) 2021. 2. 26. 04:32

7~8여년전 아이의 교육과 습관문제로 고민이 많던 때였는데 아는 선배께서 존로크의 '교육론'을 읽어보라고 추천하여 주셨다. 해외로 가는 출장 비행기 안에서 그 책을 펴들고 추천사부터 읽기 시작하였다. 서울대 교수를 거쳐 경제수장을 잠시 맡았던 조순 부총리와 정운찬 총리가 쓴 추천사인데 추천사의 첫 구절에서 부터 머리를 두드렸다. "지덕체가 아니고 체덕지"라는 구절이었는데 평생 머릿속에 넣고 다녔던 지혜 혹은 지식이 우선이 아니라 체력이 제일 먼저라는 것이다. 조순 교수가 영국의 이튼스쿨을 방문하면서 접한 첫 이미지도 도서관이나 교실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이 아니라 운동장에서 땀과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운동하는 아이들이었다고 한다.


또 다른 기억으로는 나의 어린시절 아버지께서는 '덕불고 필유린'이란 말씀을 가끔 해주셨는데 덕이 있으면 외롭지 아니하고 반드시 친구가 있다는 뜻으로 아버지께서는 '덕'을 제일 먼저 중요시 하셨던 것 같다. 그러면서 갑자기 체력에 관한 과거의 기억들이 되살아 나기 시작했다.

33살 컨설턴트 2년차시절 컨설턴트로서 프로페셔널한 기술은 커녕 직업의 의미도 제대로 모르던 시절 당시 컨설턴트 수장이던 임원에게 호되게 꾸지람을 들었다(직업을 다시 생각해보라고... 분위기는 심각했다). 더구나 경쟁 입찰 제안 마감을 앞둔 밤 11시가 넘어가는 제안서 최종리뷰 시간에 그랬다. 프로젝트 제안리더로서 최종 마감일이 다가와서 벌써 일주일정도 하루 3~4간 정도를 자며 무리하게 달려오고 있었다. 그날 밤을 꼬박새고 가까스로 다음날 마감 시간인 저녁 6시에 가까운 시점에 겨우 입찰에 참여했다. 뒷정리와 고객사에 제출 후 대응까지 마치니 저녁 7시가 가까워셔서 퇴근할 수 있었다. 정신적 좌절감과 체력도 바닥난 상태에서 여기서 포기하면 앞으로 계속 그럴것 같았기에 무너지지 않겠다는 생각에 고비를 넘길수 있었다. 그게 정신력인지는 모르겠다.

그보다 2년 앞선 MBA 1년차 시절 외국아이들과 8시간 토론을 지속하며 프로젝트 결과물을 정리 중이었다. 처음 2시간은 나의 아이디어와 주장이 먹혔다. 차츰 체력이 떨어지며 점심시간이 지나면서 오후가되자 나는 파김치가 되기 시작했다. 인사이트는 커녕 따라가기도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늘 공원에서 러닝이나 피트니스 센터에서 체력을 단련하는 외국아이들은 오후부터 역량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내가 그 동안 쏟아놓은 아이디어를 모두 소화하며 자기의 생각을 더해 훨씬 뛰어난 결과물로 마무리짓고 있었다.

회사업무던지 개인적인 일이던지 기회와 위기는 우연치 않게 다가오거나 다가가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 순간에 때로는 극한 수준의 정신력과 체력이 요구된다. 둘다 하루아침에 준비되지 않는다.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과정에 신체적 정신적 부상을 당할수 있거나 힘이달려 포기를 해야한다. 다들 정신력으로 버티거나 극복한다고 얘기한다. 그러면 체력도 버틴다고... 하루 혹은 일주일은 그럴 수 있다. 때로는 그런 상황이 한 달이상 몇 달이 지속되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더구나 상황상 그런 일이 반복될 수도 있다.

아이러니 하게도 정신적인 것은 짧은 순간은 집중력으로 버텨내기도 한다. 하지만 며칠만 지속되어도 체력이 없으면 버티기나 같은 컨디션을 유지하기 어렵니다. 지식같은 것은 순간적으로 도와줄수 있는 사람을 찾거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신체와 체력은 오로지 개인의 것이며 2일만 밤샘을 해도 버티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난 타고난 체력도 약했고 평생 운동을 열심히 해본적이 없다. 기초 체력이 형편없이 약하다. 그래서 알게모르게 포기한게 너무 많다. 남들은 그렇게 얘기한다. 정신력이나 근성이 약하다고...

지덕체가 체덕지로 바뀌어야한다. 히딩크도 체력을 육성시킨후에야 기술육성에 들어갔다. 그리고 대한민국 축구가 바뀌었다.

- 2019.0625 종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