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마의 단상(stray thought)/종마의 단상

[단상] 시간: 때우다 흘리다 채우다

종마(宗唛) 2024. 10. 22. 05:15

시간
- 때우다. 흘리다. 채우다 -

시간은 인류가 발견 혹은 발명한 최고의 상품중의 하나이다. 하루의 낮과 밤, 계절 등의 변화와 출생~성장~노화~죽음을 보면서 인류는 시간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냈고 달력과 시계라는 시간의 측정도구도 만들어 내었다. 그리고 과학자들은 드디어 시간을 선, 면, 공간에다 4차원을 구성하는 축으로 정의했다. 정말 대단한 결과물이다.

잠시 옆으로 빠져서 차원이란 물리학적 개념인데 축이 하나 추가되면 차원이 하나 늘어난다고 보면 된다. 그러면 수학적으로 보면 무한히 차원을 늘리는 게 가능하지만 입자와 공간을 연구하여  우주의 실체를 연구하는 물리학적 개념으로 보면 공간적으로는 3차원 이상은 불가능하나 아무리 XYZ에 축을 추가해도 3차원 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이 시간이란 개념을 도입하여 수학적으로 증명한 후 4차원까지 늘어났다. 물리학자들은 물리적인 세계는 11차원이 마지막이라고 한다. 먼저 시간이 포함된 4차원의 개념은 아실 테니, 5차원은 4차원 공간을 구부린다고 하는데 아직 수학적으로 증명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그런 5차원을 다시 점으로 보고, 5차원이라는 점을 연결하는 선을 6차원, 6차원의 선을 연결한 면을 7차원, 7차원의 면을 연결한 공간이 8차원,  8차원에 시간을 더하면 9차원이고 이것을 다시 구부리면 10차원이 된다. 그리고 같은 방식을 한번 더 하면 동일한 패턴이 반복되니 그다음부터는 무한반복이라 11차원이 마지막이라고 한다. 나는 첫 번째 본 유튜브에서 이렇게 이해했는데 요즘 26차원 관련 얘기도 나오고 11차원을 다르게 보니 전공이 아닌 사람으로서 솔직히 잘 모르겠다.

현실로 돌아와서 일부 현대물리학자들은 시간도 과학적으로는 흐르지 않는다고 하지만 어쨌든 현실적으로 생존의 필수조건인 의식주와 공기 등을 제외하면 우리는 시간과 더불어 일생을 살아간다. 나이가 들어가고 죽음에 한 발자국 다가갈수록 시간의 속도는 빠르게 느껴진다. 그러면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할까? 아직도 남아있는 직업병인지 3~4가지 방식으로 분류해보려고 한다.

1. 먼저 시간에 끌려다닌다.(때운다)
-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 이 시간을 보내는 방식이다. 아침의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서 식사를 하고 직장에 출근하거나 일을 하고 저녁이 되면 남는 시간에 여러 가지 개인적이나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정해진 시간에 잠을 잔다. 주로 남이 만들어놓은 이슈, 책,  정보 등을 소화하고 이해하는데 시간을 보내는 즉 살아가는 현실에 도움이 되는 것에 초점을 맞춘 방식이다. 인류가 오랜 기간 습득하고 축적해 온 바이오리듬에 맞는 효율적이고 최적화된 방식일 수 있다. 하지만 뭔지 모르게 내가 시간이라는 틀 안에서 끌려다니는 것처럼 느껴지며 오랜 기간 틀을 깨면서 진화해 온 인류에게 조금 아쉬운 부분일 수 있다.

2. 시간을 흘린다.
- 통상 2가지 부류의 사람이 여기에 속할 가능성이 크다. 먹고사는 것에서 벗어나 여유가 있어서 그냥 생각 없이 시간을 흘려보내는 타입이 있고, 두 번째는 종교적으로나 따로 깨달음을 얻었지만 타인과의 교류보다는 개인에게 충실하며 유유자적하게 시간을 흘리는 타입이다. 이들은 여유로워 보일 수도 있고 한심해 보일 수도 있으나 개인에게는 매우 행복한 선택일 수 있다.

3. 시간을 채운다.
- 시간의 사용을 적극적으로 하되 타인의 정보나 인터럽션을 처리하기보다는 자기의 의지대로 사용하는 방식이다. 운동, 독서 및 창작행위가 여기에 해당할 수 있다. 자기주도로 사업을 하거나 회사에서 일을 해도 그렇다고 볼 수 있다. 바이오리듬과는 맞추되 상대적으로 많은 시간을 자유의지로 활용하는 것이다.

4. 시간을 재정의 하고 사용하는 방식을 바꾼다.
- 꽤 오래전 '시간의 정복한 남자 류비세프'라는 책을 보았을 때 그가 얼마나 효율적이고 압축척으로 시간을 사용해서 물리적으로는 동일한 24시간을 보통사람 보다 거의 세배의 시간처럼 효율성을 늘려서 사용한 방식에 탄복한 적이 있다.

시간이 흐르던 흐르지 않던 현재의 우리는 시간 속에서 살아가고 그 시간 속에서 시작과 마지막을 만난다. 우리는 마지막이라는 순간을 향해 여행 중이니 그 여행을 자유의지의 시간으로 채우기도 부족하다.

- 2019.1010 종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