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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업의 본질

종마(宗唛) 2024. 10. 24. 09:07

필자는 직장인으로 25년 가까이 일하고 퇴직하였다. 몇 년 전 우연한 기회에 필자가 근무하던 분야에서 수십 년째 글로벌 시장에서 선두를 지키는 기업들의 원동력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분석해 보는 프로젝트에 잠시 발을 담근 적이 있다. 과거에도 컨설팅에서 일한 적이 있어서 기업의 경쟁력 강화요소를 분석한 적이 많다. 인재, 신제품개발력 등 그런 요소들은 무수히 벤치마킹했고 이제는 글로벌 기업들과 차이를 발견하기 어려울 만큼 우리나라의 업종별 선두기업들도 최고의 수준에 올라서있다. 수개월의 작업 끝에 살아 움직이는 구체적인 생명체인 회사에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는 답이 나왔다. 답은 글로벌 선두기업들은 업의 본질(해당 기업이 활동하는 업종의 본질)에 충실하다는 것이었다. 이런 걸 고민 안 해본 사람들은 쉽게 이런 업의 본질보다는 융합의 시대니, 파괴적 혁신의 시대니 하면서 혁신이 제일 중요한 것처럼 얘기하지만 그런 현상들은 항상 주위에서 발생하고 있고 십수 년에 걸쳐서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지만 대부분의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 기업들은 그걸 몰라서 대응 못하는 게 아니라 알아도 현재의 파이를 잠식당하는 걸 견딜 수 없어서 또는 가지고 있는 legacy 시스템에 발목이 잡혀서 혁신이 어려울 뿐이다.

기업의 본질은 경제활동으로 인한 이익창출이다. 교사의 본질은 교육을 통한 인재양성이다. 국회의원으로 대변되는 정치인의 본질은 지역구의 의견을 수렴하여 정책이나 제도에 반영하는 입법활동이다. 군인의 본질은 국방수호이다. 국민의 본질은 경제활동으로 보면 세금납부와 대신 해당 국가가 제공해 주는 인프라와 복지의 혜택을 받는 것이다.

기업도 가끔 여러 가지 다른 잣대로 평가받는다. 이미지, 기업윤리,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등이 중요한 이슈로 떠오를 때가 있다. 특히 사고나 어떤 이벤트를 겪을 때 이런 기준들이 중요해 지고는 한다. 그래도 솔직히 이런 것들은 분명히 기업의 부수적 활동이나 활동의 결과이다. 이런 것들은 일정기간 부족해도 기업이 망하지 않는 한 다시 회복할 기회가 있다. 하지만 아무리 이미지가 좋아도 이익을 창출하지 못하는 기업은 빠른 시간 내에 적자의 누적과 도산의 위기에 처한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 기업도 도덕성으로 과하게 평가한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나뿐일까? 나는 기업가도 아니며 더구나 퇴직한 마당에 이해관계도 없다. 얼마 전 선거에서도 정책보다는 이미지로 승부가 갈리는 곳이 많았다. 필자가 느끼기에는 거대 양당 모두 그런 점에서 차이가 없었다. 공약이란 것들도 그 분야의 전문가가 한 번만 생각해 보면 터무니없거나 논란의 여지가 많은 인기성 공약이 남발했다. 도덕성과 이미지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혹자는 도덕성은 그런 모든 것에 우선되는 기본적 요소라고 하기도 한다. 위법한 행위는 법에 의해 처벌되면 된다.

우리 기업들은 성장의 과정에서, 아니 많은 나라의 기업들도 일정 부분 정부와 협업하면서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규제와 때로는 금융지원을 받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정경유착이라는 부작용도 가져왔다. 하지만 필자의 판단에 과거에는 몰라도 이미 거의 십수 년 전부터 정치권 혹은 정부와 밀접했던 우리나라 기업들은 결과가 좋지 않았다. 다음 정권에서 그게 실질적 문제가 크던 작던 심판을 받았기 때문이다. 대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고위층이 아니라도 이런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다. 그래서 사실 자체적 역량이 있거나 충분한 규모를 갖춘 우리나라의 글로벌 기업들은 정부와 밀접히 엮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규제에 꼼짝 못 하는 기업들은 정치권의 손길을 피할 수 없다. 분명히 기업들은 해당 기업에 우리한 환경조성을 위한 규제조성이나 변경을 노력을 한다.

기업은 업의 본질인 이익창출 역량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그로 인해 일자리도 창출해야 하고 법인세도 납부해야 한다. 우리가 얘기하는 도덕의 어원은 노자의 도덕경에서 나왔다. 현대에는 도덕이 윤리에 관한 작은 분야로 좁혀져서 통상 이해되지만 도는 중국철학에서 유일하게 우주의 원리에 대해 다룬 것이고 덕은 인간의 삶의 원칙에 관해 다룬 것이다. 이 글을 읽는 일부는 궤변이라고도 느껴지겠지만 도덕적인 기업은 업의 본질에 충실한 기업이라고 얘기하고 싶고, 통상 그런 기업들은 부수적인 것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기업의 본질이 주객전도가 되어서는 안 된다.

- 2020.0423 종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