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마의 단상(stray thought)/종마의 단상

[전달 단상] 생산론 - 회사 후배가 쓴 글

종마(宗唛) 2026. 5. 25. 09:27

아래 글은 회사 후배가 쓴 글이다. 최근에 지인이 쓴 글 중에 가장 와 닿아서 내 공간을 통해 공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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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생산론 - 화재 후배가 쓴 글

사람은 생산을 할때 살아있다는 것을 느낀다. 궁극의, 최상의 생산은 자식이다. 그다음으로는 내손으로 일구어낸 유무형의 무엇이다. 생산을 하지않는 삶은 권태에 질식되어 죽고 만다. 금수저 건물주로 매월 넉넉한 월세로 밥걱정 없이 오전에 골프연습, 정오에 사우나, 오후에 건물순회로 일상을 보낸다면 그 인생이 어떠할까? 센과치히로의 모험에서 엄마빠가 변해버린 딱 그 수준의 돼지의 모습일 것이다. 인간은 생산을 해야한다. 제손으로 동식물을 일구든, 가구를 만들든, 글을 쓰든,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해야 한다.

수많은 고용된 노동자들이 재미없다 한다. 나역시도 그렇다. 거대 기업 또는 조직에 소속되어 세지도 못할 만큼의 돈을 함께 벌고, 이 세상에 제품, 서비스라는 가치를 생산해내는데 왜 재미가 없나? 너무 멀어서다. 인간은 컴퓨터가 아니다. 인풋 후 아웃풋이 존재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지만 눈으로 볼수 없으면 체감하기 어렵다. 나의 산출물은 내 실존을 증명하는데 산출물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 내이름이 적혀 있지 않다, 이곳을 떠나면 저것은 더이상 내것이 아니다. 심지어 나하나가 없다 해도 결산손익에 1원도 변동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재미없고 불안하다. 불안은 스릴과 재미를 동반하기 마련인데 안타깝게도 재미도 없는데 불안하기까지 하다. 그것이 현대 노동자의 질곡이다.

예술가는 창작한다. 자기 이름으로 이세상에 새로운 것들을 탄생시킨다. 내 영혼의 DNA가 이세상에 뿌려진다. 배고플까? 배고프지 않다. 자기자신으로 충만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배운 것들과 훈련받은 것들은 불과 수세기전에 고안한, 고효율의 노동자를 생산하기 위한 기술들이다. 인간답게 실존하려면 이 모든 굴레를 냉철하게 직시하고 그 속에서 행동할지 그것을 벗어날 지 스스로의 힘으로 결정해야 한다. 부와 명예같은 보상들은 빈껍데기일 뿐이다.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에 책임지는 데 대한, 그 자유의 부담을 온몸으로 안고 가야한다. 그래야 창조, 생산을 할 수 있다. 나의 실존을 증명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