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마의 단상(stray thought)/습작단편 25

[습작 수필] 성당의 종소리

오늘은 일요일이다. 아침식사 후 집안정리를 마치고 커피를 내리고 있는데 근처 성당에서의 종소리가 은은하게 창가로 스며든다. 스마트폰의 시계를 들여다보니 11시를 가리키고 있다. 아니 디스플레이를 하고 있다. 디지털시계가 아날로그시계를 대체하면서 시계를 보고 몆 시를 가리키다는 표현이 어색하다. 시계가 대중화되기 이전인 19세기만 하더라도 성당의 종소리는 그 마을의 사람들에게 시간을 알려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하지만 거의 모든 사람이 시계를 가지고 있는 요즘시대에도 종소리가 계속되는 것은 과거와 현재를 연결해 주는 연결고리의 느낌도 있다. 기독교가 대중화되지 않았던 어릴 적 우리 마을에서는 마을공회당이 그런 종을 치는 역할을 했던 기억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이상하게도 이미 잠을 깨고 식사도 하고..

[습작 수필] 구기자 차

어느 날 구기자 차의 깊은 맛을 느끼게 되었다. 구기자 차라는 말을 처음 듣고 맛보았던 기억은 20대 초반 친구들과 설악산 등반을 하는데 산장이나 가끔씩 높은 곳에 올라서 먹을 것을 등반인들에게 판매하는 사람들의 메뉴에서 보았다. 그때는 맛도 강했고 또 처음 보는 특이한 맛에 일종의 약차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거의 오랜 기간 구기자 차를 굳이 마실일은 없었는데 어느덧 식품회사들이 티백형태로 대량 보급하면서 마시는 경우가 늘게 되었다. 늘 마시면 시 그다지 맛이 특별하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단순히 자주 마시는 보리차, 커피나 녹차의 대안정도로... 나는 일상적으로 보리차나 옥수수차를 주로 마신다. 생수는 뭔가 밋밋하고 심지어 메밀차를 비롯한 다른 차들은 카페인등 성분이나 향 때문에 그런지 일상적으로 물처..

[습작 수필] 창밖을 보다 문득

창밖의 풍경은 이국적 유럽인데 갑자기 어릴 적 고향마을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살고 있는 스톡홀름 아파트는 130년 정도 된 작은 건물에 있는 아파트인데 내부만 고쳐서 산다. 거리의 대부분 건물들이 그렇다. 그러다 보니 이른 새벽이나 밤늦게 가게들이 문을 닫고 사람들이 집으로 들어가고 아무도 없는 거리는 그냥 수십 년 전의 이곳과 크게 다를 게 없을 것 같다. 뉴욕이나 서울 같은 현대식 대도시 하고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밤이나 새벽에는 매우 조용하고 한적한 느낌이다. 그래서 오늘새벽잠이 깨서 갑자기 고요한 느낌에 창밖을 보다 시간이 뒤로 흘러간 느낌이 들었나 보다. 어린 시절 방학 때면 늘 강릉의 본가에서 지냈다. 할아버지께서는 초등학교 5학년 겨울에 돌아가셨는데 이미 수년간 병상..

[습작 단편] 그녀가 화장을 한다

기주는 아침일찍 일어나 출근길에 화장하는 아내를 보고 있다. 프리랜서 작가인 기주는 늘 아내보다 늦게 출근하는 탓에 아내의 출근 준비를 바라보는 편이다. 오늘따라 거울앞에서 화장하는 그녀가 매력적이다. 하지만 그 느낌이 더 낯설다. 그 화장은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위한 느낌이다. 기주와 아내는 대학교 1학년때 만났고, 오랜기간을 연애한 후 30대 중반이 넘어서야 결혼을 하였다. 20대 후반이 지나가면서 주변에서는 왜 결혼을 하지 않냐는 따가운 눈초리와 기주에게 많은 비판의 말들이 있었다. 너는 남자니까 몰라도 네 여자친구는 이렇게 오래기간 사귀고 결혼을 하지 않으면 흠이된다고 하였다. 기주는 아내와 사귀던 시절에 늘 마음 한켠에 왠지모를 불안감이 있었다. 기주의 아내는 예나 지금이나 늘 기주에게 충실..

[습작] 이방인

알제리에서 태어난 카뮈는 프랑스인 이지만 알제리에서는 프랑스에서 이주해 온 이방인이었다. 성장후 다시 프랑스로 왔지만 이번에는 알제리에서 온 이방인이었다. 사르코지 대통령시절 카뮈의 묘지를 파리로 옮기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유족들은 그냥 카뮈의 정신적 고향인 루르마랭의 작은 공동묘지에 머물기로 하였다. 사후까지는 이방인이 되지않게 하려는 생각이 아니었을까 유추해본다. 그럼에도 루르마랭의 묘지에서 만난 카뮈의 묘지는 여전히 이방인의 묘지같은 느낌이었다. 역설적이게도 스페인에서 태어나고 사랑받은 피카소는 스페인에서 원주민이었다. 프랑스에서 활동하고 사랑받은 피카소는 프랑스에서도 원주민이었다. 춘천에서 태어났지만 강릉 본가로 온 나는 이방인이었다. 강릉에서 서울로 온 나는 또 이방인이었다. 퇴직 후 고향으로 귀..

[습작] 언젠가는

매일 할 일이 있었음을 매일 갈 곳이 있었음을 같이 식사할 가족이 있었음을 만나고 소통할 친구가 있었음을 음식을 잘 씹을 수 있는 튼튼한 이가 있었음을 걸을 수 있는 두 다리가 괜찮았음을 두 눈의 시력이 온전함을 글을 읽을 수 있는 온전한 정신이 있었음을 소중하고 행복했음을 느끼게 될 것이며... 주변을 살펴볼 여유를 가지지 못했음을 어려운 친구를 돕지 못했음을 하고 싶었던 일을 못했음을 건강을 돌보지 않았음을 그리고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보지 못했음을 아쉽고 후회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 종마 -

[습작] 전단지

퇴근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20대 여성이 지하철 매장 앞에서 전단지 한 뭉치를 들고 서있다. 얼굴에는 지쳤거나 힘든 기색이 역력하다. 하루 종일 거부를 많이 당했는지 이제는 사람들에게 잘 다가 가지도 못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런 경우 일단 소비자가 관심을 보이면 좀더 구체적인 영업으로 이어진다 점심시간때 식당 근처의 이미 힘들어보이는 노인들이(주로 여성들) 음식점 전단지를 정신없이 나누어 주신다. 때로는 막무가내로 손에 쥐어주기도 한다. 가끔 안받고 지나가면 꼭 동료중 한 사람은 나도 전에 전단지 아르바이트 했었는데 진짜 힘들고 장당 10~20원 겨우 받는데 좀 받아주라고 얘기한다. 조금만 지나면 길거리나 쓰레기통에 수북이 그 전단지가 버려져 있다. 다양한 매장이 많은 강남역 거리를 걷거나 유명 프랜차..

[습작] 스물네시간(부제: 아버지와의 대화)

그리운 그대 어디갔나요 그대가 제결을 떠난지도 거의 20여년이 흘렀습니다 제 아이가 제가 대학을 위해 그대를 떠난 나이가 되니 그대와 대화가 하고 싶습니다 그대와의 대화는 이제는 꿈속에서나 가능하니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대가 떠나고 한편은 원망도 많았습니다 그대가 몹시 그립습니다. 아직도 기억납니다 제가 직장에 갓 들어간 서른이 되던 어느날 그대가 나의 자취방을 찾아왔습니다 우리는 그날 긴 대화를 나누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날 우리의 대화시간은 평생우리가 나눈 대화시간 보다 길게 느껴졌습니다 제가 태어나 그대와 같이한 30년 동안 우리는 나눈 대화가 별로 없었습니다 대화도 없이 30년의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신기하기만 합니다 돌이켜보니 어릴적엔 그대가 나에게 많은 얘기를 해주신 것 같기도 ..

[습작] 열정

오랜만에 무언가에 대한 열정이 생겼다 얼핏아는 사람들은 그 열정이 좋다고 한다 숙고하는 사람들은 그 열정을 말린다 현실적으로 그 열정은 훅 불면 날라갈 것 같다 그래도 그 열정을 어쩔 수가 없다 그동안 살면서 생존과 현실을 핑계로 날려버린 열정이 너무 많다 열정을 계속하려면 현실에서 잃을 것이 적지않다 열정은 식었다가도 때만되면 다시 솟아난다 어떻게든 열정을 불태워야한다 - 종마 -

[습작] 꿈

A는 택배원이다. 복잡한 집안일로 십여년 동안 매일 밤 잠을 못자고 때로는 나쁜 꿈에 시달리다 겨우 지난 2~3년전부터 괜찮아 졌는데 최근에 다시 그런 악몽이 재발하고 있다. 자면서도 머리가 복잡해 수면의 질도 나빠서 여러가지 건강지수들이 나빠지고 있다. 그로인해 코골이와 수면무호흡도 생겼고 나쁜 취침 자세로 피가 안통해 가위도 눌리고는 한다. 운전중에도 졸음이 미칠듯이 몰려온다. 이러다가는 택배차 운전을하다 사고가 날것 같다. 뭔가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B는 수학교사이다. 중고교 시절에는 수학을 지독히도 못했다. 그러던 고등학교 어느날 꿈에서 고민하던 기초수준의 미적분을 풀게되었다 그 이후로 수학 성적이 꾸준히 오르고 대학도 수학교육과를 가서 드디어 수학교사까지 되었다. 요즘 다시 꿈에서 인공지능 알..